외우고 해설한 신학 속으로
교회를 우겨 넣으려 하지 말고,
신학을 이곳 사람들 속으로,
그리고 여기 교회 속으로 가져와
이곳의 만나로 펼쳐내려는
고뇌를 걸머져야 합니다.

우리의 신학은
현장에서 작동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희한하게도, 나는.
그러는 내가 싫지 않았습니다.
벌거벗은 몸이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웠던
아담과 달리. 마음의 속살을 다 들켜놓고도 나는
하나님께 부끄럽지도
죄송하지도 않았습니다.

석양이 가까워 오는 주일 오후에
간만에 생상스를 듣다가
박경리 유고시집을 집어 들었습니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문득 나의 기도 소리가 내 귀에 들리고,
나는 예배당에 홀로 앉아
아침 내내 엉엉 울었습니다.
인생이 서럽고,
목회가 서글퍼서가 아니었습니다.
그 깨달음과 그 모습이 그냥
밑도 끝도 없이 감동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 그것은 내 일상의
기도가 되었습니다.

가상 공간이 아니라,
현실 공간에서.
메타버스의 그림 건물이 아니라,
늘 가던 우리 교회당 안 그 의자에
모두 함께 모여,

마음껏, 목청껏, 실컷 드리는 예배를
이렇게 거부당하면서는
정말 살기가 힘들어요.

나와 설교자하우스에 대한 신뢰와 기대를 품고
그 큰 재정을 기쁨으로 쏟아부으며
오랜 내 기도의 응답이 되어준 장로님의
그 헌신에도 보답을 해야 합니다.

아무튼 나는 뺨을 후려치고 싶었습니다.

예수와 예수의 말씀을 너무 사랑하는 것이
그 외의 다른 사람들을 너무 쉽게 미워하는
정당한 명분일 수는 없는 건데…
사실은 그 반대인데…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앞세우면
무엇을 해도 괜찮은 것이
절대 아닌데…

꼭두 새벽에, 별안간.
입가를 맴도는 쓸쓸한 노래 가락.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나를 더 사랑하신다.”
“내가 우리 아이를 사랑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우리 아이를 더 사랑하신다.”

그런 마음이 드니 아이들을 믿고 기다려줄 여유도,
마음을 편히 가질 배짱도 생겼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할아버지 장학금”이라는 말로 두 세대가 함께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하며 고마워합니다.
그리고 함께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자랑스러워 합니다.

“논문을 마치니 소감이 어때요?”
“이제 공부를 한번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쳤으면 이제 공부한 것으로 사람을 살려야지!”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고
제자 목사가 돌아간 후,
문득 27년 전 그 순간이
떠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