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는 늘 마음을 포근케 합니다.
야릇한 소망의 기운에 취하게 합니다.
초등 5학년 여름, 엄마에게
연두색 나이롱 반팔셔츠 선물 받은 그날 이래
이날까지 일편단심 좋아하는 연두색 느낌이
내 가슴에 스며들곤 합니다.

정든 사람과 잠시 머무는 것은
살면서 누리는 은총입니다.

시골 멀리 떨어져 온 날 보겠다고
만사 제치고 찾아와 한 밤을 함께 한
두 친구를 보내고

그렇게 한참을 가는데, 고통을 걸머지고 죽음을 향해 걸어가시는 예수님이 갑자기 멈춰 섭니다. 뒤를 돌아봅니다. 이 여자들을 빤히 보시며 말씀합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이제는,
조직의 일원이 아니라,
짓누르는 책임감이 아니라,

생각이 자유롭고 마음이 넉넉한
신앙인으로 살다가
그 걸음 어느 길목에서
얼굴과 얼굴로 우리 주님을
뵙고 싶단 생각을 문득문득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그만큼 살아온 내 인생의 명예이고
빛나는 영광일 것이란 생각을
오랜 세월 해왔습니다.

조그만 현지 교회 주일 예배에
성경 봉독 한 순서 맡았다고
이렇게 귀하게 여기고 조심스러워 하고
엄마에게 기도 부탁까지 하는 모습을 보며
내심 놀랐습니다.

조직의 일원으로서 공적인 책임을 걸머지고 살아왔던 공인의 자리에서 이제 자유로운 개인으로 남은 얼마동안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는 사실이 감격스럽기만 합니다. 이만큼 살아보고 이제 잊혀지는 자리에 들어서면서, 기억나는 것들 몇 가지를 은퇴하는 자에게만 특권으로 부여되는 이 기회를 활용하여 여러분과 나누어보려고 합니다.

<마지막 호>
뉴-노멀 시대는 우리가 익숙했던 모든 것을 뒤집어 새로운 판을 짜고 있다. 미래는 예측이 불가능하게 되었고 계획은 세울 수 없거나 세웠을지라도 갑자기 취소나 변경되는 것이 정상으로 받아들여지는 임시 계획일 뿐이다. 뉴-노멀 시대가 판을 새로 짜는 시대라면, 그 판은 무엇이며, 어떻게 새롭게 짜일 것이며, 새로운 판에 부응하고 적응하여 주도하는 방안들은 무엇인가를 터득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가 되었다.

한국교회는 설교의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고통과 절망의 시대에
하나님이 주시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의 말씀으로
달려 나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