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학 강의

뉴 노멀 시대의 설교

뉴 노멀 시대의 설교

1. 닥쳐온 뉴-노멀(New-Normal) 시대

코로나 바이러스 시대 – 팬데믹

코로나바이러스가 세계화하면서 전 세계가 동시에, 동일한 문제로, 동일한 고통을 겪고 있다. 이 현상에 대한 표현도 다양하다. 어떤 이들은 코로나바이러스의 폭발적 감염 현상에 주목하여 팬데믹 시대라 부른다. 접촉(contact)이 단절된 현상에 초점을 맞추어 언텍트(Untact) 시대라 부르기도 하고, 혹은 초연결 시대라 부르기도 한다. 넥스트 노멀(Next Normal) 시대라고 부르는 이도 있다. 어떤 학자는 신인류 시대라는 말로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말미암아 도래할 미래 시대의 혁명적 변화를 지칭하기도 한다. 일부 학자들은 이번 사태로 문명사적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단언한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초래한 핵심 문제는 세 가지 관점에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우리의 일상생활에 초래한 삶의 방식을 현상학적인 관점에서 규명하는 것과, 둘째는 그러한 현상 속에서 살아야 하는 우리 자신에게 야기하는 본질적 문제를 규명하는 것, 셋째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현실이 우리의 예배 혹은 설교에 제시하는 현상학적 요구가 무엇인지를 규명하고, 야기하는 본질 문제에 어떤 내용으로 대응할 것인지를 강구하는 것이 이 시대 교회와 목회자가 걸머져야 할 책임이다.

1) 비정상적인 현상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는 개인은 물론 사회, 국가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새로운 현상을 초래하였다. 그동안 정상적, 일상적, 전형적, 관행적이던 것들이 모두 파괴되거나, 무효가 되거나, 금지되어서 전혀 작동하지 않는 비정상(Ab-Normal) 상태가 매일의 현실이 되고 있다.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악수 정도가 아니라 서로 껴안고 기뻐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절대 금지이다. 마스크로 얼굴의 반 이상을 가리고 멀리 떨어져야 한다. 그것은 호불호의 문제가 아니라 너와 나 그리고 이 사회의 생명을 지키는 생존 문제가 되었다. 그리운 사람은 수시로 식사에 초대하여 밥을 같이 먹으며 정다운 대화를 나누는 것은 도리요 기쁨이요 살아가는 보람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대접하는 자리를 만들지 않는 것이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이다. 초대하는 것은 그의 생명이 위협받는 현장으로 불러내는 무분별처럼 여겨진다. 불과 일 년 전만 하여도 한여름에 버스 안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으면 모두가 이상한 사람 보듯 쳐다보았다. 그러나 지금은 버스 안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있으면 모두가 그 사람을 제 정신이 아닌 사람 보듯 쏘아보는 눈초리로 쳐다본다. 요양원에서 어머니가 운명하고 있는데, 달려온 아들은 들어가 엄마를 부를 수도 없고 홀로 죽어가는 엄마를 창밖에서 우두커니 들여다보고만 있어야 한다. 일천 명이 모여 예배드리던 예배당에는 선착순 신청자 200명만 덩그러니 앉아야 한다. 6명씩 12명이 앉던 의자 두 줄에는 단 세 명만 앉을 수 있다. 그것이 주일 예배당의 당연한 일상이 되고 있다. 우리에게는 매우 낯설고 비정상적인 현상들이다.

2) 비정상의 일상화 – 뉴-노멀(New-Normal) 시대

이러한 비정상이 잠시만 참고 버티면 다시 이전의 정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데 더 큰 무서움이 있다. 비정상이 종착점을 확인할 수 없이 지속되고 있다. 시한을 확정할 수 없이 비정상적 현상의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 당국자들도, 과학자들도, 의료인 단체도, 언제 이 현상이 종결될지, 언제 백신이 만들어질지, 만들어지는 백신의 효과가 어느 정도일지, 얼마동안이나 유효할지, 그 어느 것도 확실하게 예측할 수 없다. 특히 조심해야 하고 철저하게 방역을 해야 한다는 것이 할 수 있는 말 전부일 뿐이다. 미국 감염병 학회의 전염병 관련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앤서니 파우치는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이 2020년 말쯤 개발된다고 하여도 자유로운 일상의 활동은 2021년 말이나 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막연한 짐작을 할 뿐이다.

그 어간에 낯설고 불편하던 비정상이 점점 익숙한 일상이 되면서, 비정상이 이제는 정상(Normal)이 되고 있다. 닥쳐온 비정상(Ab-Normal)이 점점 새로운 정상(New-Normal)이 되어버렸다. 나는 이 점에 초점을 맞추어 지금부터 시작되는 시대를 뉴-노멀(New-Normal) 시대라고 지칭한 것이다. 이어지는 시대를 어떻게 지칭하든지 그 내용과 본질은 같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몰고 온 현재의 현상은 모든 방면에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다는 인식이다. 잠시 버티고 참아내면 지금까지 살아온 익숙한 시대로 되돌아갈 것이라는 기대는 거의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지금부터는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야 한다. 많은 학자는 이번 사태로 문명사적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장담한다. 어떤 학자는 신인류 시대라는 말로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말미암아 도래할 미래 시대의 혁명적 변화를 지칭하기도 한다.

3) 팬데믹의 후유증 – 멘탈데믹(Mental-Demic)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인한 비정상적인 현상들은 필연적으로 사회 심리적 병리 현상들을 초래한다. 팬데믹이 가져온 외상증후군인 셈이다. 절망감, 좌절감, 무력감, 고립감, 유기감, 상실감, 불안감, 두려움, 자포자기, 자기중심성, 외로움, 우울증, 이유를 모를 분통, 통제할 수 없는 분노 등등이다. 이것은 다름 아닌 심리적 공황상태이다. 코로나 블루(blue)라는 말로 집약되는 이러한 현상들이 점점 더 깊어지고 보편화되어 전반적인 삶의 풍토가 되면 이 사회의 심각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사실 사회심리 혹은 경제나 경영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은 이미 정신을 뜻하는 멘탈(mental)과 감염병의 광범위한 확산을 의미하는 팬데믹(pandemic)을 조합하여 멘탈데믹(mentaldemic) 이라는 신조어로 코로나19 사태 이후 닥쳐올 사회적 심리 현상을 예측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멘탈데믹 현상은 잠시만 참고 버티면 사라져 다시 이전의 정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데에 코로나바이러스보다 훨씬 더 큰 무서움이 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머지않아 퇴치될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이 사회에 몰고 온 심리적 병리 현상은 계속 살아남아 우리의 생활 전반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이 사회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풍토가 되고, 문화가 될 것이다. 사실, 앞에서 열거한 다양한 심리적 병리 현상은 언제나 어느 사회에나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그러한 현상이 개인의 문제나 불우한 몇몇 사람들의 지엽적인 문제였다. 혹은 어느 특정 지역에서 일어난 문제이며, 그 책임은 각 개인의 문제로 다루어졌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서 잠잠해지고 일상은 다시 평상의 삶으로 되돌아가곤 하였다. 사회 전반에 걸친 보편적이고 지속적인 현상은 아니었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말미암아 조성되는 뉴-노멀 시대의 멘탈데믹 현상은 그 문제들이 개인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친 보편적인 현상이 되고 한 사회의 삶의 방식이 될 것이라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과 사회적 두려움이 있다. 그것은 마치 이 사회의 풍토병처럼 자리를 잡을 염려도 있다. 이것은 앞으로 코로나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이 사회의 바이러스가 될 가능성이 크다.

4) 직면하는 문제의 본질 – 비인간화의 일상화

팬데믹으로 불리는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에 대응하기 위하여 방역이라는 이름으로 동원된 모든 지침이나 처신의 핵심은 한 마디로 거리두기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접촉을 최대한 끊고 사는 것이다. 거리두기에 초점이 맞추어진 이 모든 방역지침을 충실하게 지키다 보면 우리는 결국 비인간화된 여건 속에 던져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떨어져 있어야 하고, 만나지 않아야 하고, 혼자 있어야 하고, 식탁에서 대화하지 않아야 하고, 서로 신체적 접촉을 하지 않아야 하고, 사람들이 모인 곳에 가지 않아야 하고, 수업은 집에서 온라인으로 모니터를 통하여 진행해야 하고, 여섯 살 꼬마는 어린이집에서 친구에게 감염당할 위험 없이 안전하게 혼자 놀기 위하여 함께 놀 인형을 필수적으로 지참하고 등원해야 한다. 인간이 인간 없이 살아야 한다. 현실의 삶이 사람 사는 것같지 않다는 경험적 감성적 확인이다. 생명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하여 취한 강력한 방역지침이 급기야 초래한 심리적, 정신적 공황 상태인 멘탈데믹의 본질도 사실은 “사람같지 않음” “사람 사는 것 같지 않음”의 확인과 감정이다. 멘탈데믹 상황을 살아내는 동안 우리가 경험하는 핵심 정서도 결국 비인간화의 문제인 셈이다. 뉴-노멀 시대의 목회자는 현장에서 직면해야 하는 대상인 교인들과 그들이 처한 사회적 상황의 근본적이고 공통적인 문제가 바로 비인간화되어버린 상태로부터 겪는 공황 상태요 고통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해야 한다. 이러한 현실 인식은 자연스럽게 교회와 목회자에게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한다. 목회자들이 목회를 하고 강단에 선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성도들을 직면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멘탈데믹의 사회 심리적 병리 현상의 본질을 비인간화로 인식한다면 이에 대한 대응책의 개발도 어떻게 하면 인간화를 성취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이런 점에 주목한다면 앞으로 목회나 설교의 중요한 흐름은 공감과 긍휼이 중요한 주제가 될 것이라는 예측을 할 수 있다. 미래사회의 인간은 공감형 인간이어야 하며, 미래의 시대는 공감형 지도자를 절대적으로 요구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소외되고 비인간화 된 사회 풍토 속에서 살아야 하는 교인들에게 목회자는 무엇보다도 공감형 목회자이어야 한다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리고 교인들 사이에도 서로 공감과 긍휼의 삶이 보편화되어 서로서로 사는 보람과 의미와 소망이 되어줌으로써 비인간화의 현상을 극복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목회 현장에서 교인들을 대할 때 무엇보다도 공감형 목회자가 되는 일로부터 목회 사역이 시작되어야 한다. 목회자는 말씀 목회 전문가임과 동시에 공감형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말씀의 사람임과 동시에 공감의 사람이어야 한다. 다른 말로 하면, 무엇보다도 본인이 먼저 인간적이어야 하고, 인간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며, 인간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어야 한다. 공감은 긍휼로 이어진다. 공감은 동일화의 감정이라면 긍휼은 자기를 희생하여 상대방의 존재와 삶을 채워주는 나눔이다. 뉴 노멀 시대의 목회자는 자신이 공감과 긍휼의 사람이어야 할 뿐 아이라, 목회의 방침과 교회의 분위기를 그렇게 조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성도들이 서로서로 공감과 긍휼의 사람으로 살도록 이끄는 전문가이어야 한다. 이러한 태도는 개인과 개인의 관계를 넘어 교회와 교회의 관계에서도 중요한 주제가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앞으로는 공교회로서 교회 이해가 중요한 주제가 될 것이다.

2. 뉴-노멀(New-Normal) 시대의 목회

1) 뉴-노멀 시대가 교회와 목회에 던지는 궁극적 요구

뉴-노멀 시대가 교회와 목회자들에게 내놓는 핵심적인 요구를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본질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본질로 돌아간다는 것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구체적인 실천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교회는 이제 말씀의 시대 곧 설교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역사의 방향을 바꾸고 판을 새로 짜시겠다는 시대적 징조를 알아차리고 하나님이 짜시는 새로운 판에 맞게 모든 면에서 혁신을 이루라는 요구이다. 과거 회복이 아니라 새로운 현실에 대한 대비와 적응이 필연적인 시대가 열리고 있다. “어게인(Again)”이 아니라, “리셋(Reset)”이다.

2) 뉴-노멀 시대의 생존을 위한 3종 백신 IMS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유발된 뉴-노멀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각각 세 종류의 능력을 갖추어야만 한다. 뉴-노멀 시대의 생존 백신인 셈이다.

(1) Immunity(면역력)
바이러스의 팬데믹 상황에서 사회적 방역과 함께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각 개인의 면역력(Immunity)이다. 나란히 앉아 있었는데 한 사람은 바이러스 양성 판정을, 옆 사람은 음성 판정을 받는다. 어느 지역이 모두 안전하거나 모두 위험한 것이 아니다. 각 개인의 면역력이 관건이다. 그러므로 팬데믹 상황에서는 무엇보다도 각 개인이 스스로 면역력을 키워야 한다. 이것은 각 개인의 생물학적 능력이다. 면역력이 없으면 생명을 보존하기 위하여 이동하지 말고 한 곳에 격리되어 있어야 한다. 정상적인 생활에 치명적인 장애를 겪게 된다. 고용량 비타민 치료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여 비타민 품귀 현상이 빚어지는 것도 개인의 면역력 증강에 관한 관심에서 일어난 결과이다.

(2) Mentality(정신력)
코로나 사태가 초래한 전사회적, 전국민적 심리적 공황 상태인 멘탈데믹 상황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정신력이다. 멘탈데믹의 뉴-노멀 시대에는 면역력을 갖추어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는다고 하여 삶의 안전과 평안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이 만들어지고 바이러스를 퇴치한 이후에도 우리의 삶은 다른 차원에서 오히려 더 불안하고 위험한 삶의 상황에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멘탈데믹의 상황에서는 어떤 심리적 병리 현상에서도 그 영향에 사로잡혀 넘어지지 않을 정신력(Mentality)을 갖추어야 한다. 팬데믹에서는 바이러스 방역과 바이러스 백신이 필요했다면, 멘탈데믹에서는 심리방역과 정신력 백신이 필요하다. 사실 경제 산업 상업 심리 등 사회의 각 분야에서 이미 이 문제를 인식하고 다양한 방식의 대비책을 내놓고 있다. 명상앱이나 정신건강 어플리케이션의 개발이 활발하게 개발뿐 아니라 마음의 평안을 주는 자연의 소리나 음악 등을 조합하여 제공하는 소위 사운드 디자인이라는 분야가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모두 정신 심리적 공황상태에서 벗어나거나, 그 상태를 잊거나, 빠져들지 않기 위한 심리적 장치들이라고 할 수 있다.

(3) Spirituality(영력)
그러나 바이러스 감염 위험을 면역력으로 이기고, 멘탈데믹을 정신력으로 극복하였다 하여 인간으로서 삶의 문제가 다 극복되는 것은 아니다. 건강한 체력과 불굴의 정신력만 갖추면 사람은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생물학적 생명이 보존되고, 정신적 평안이 확보되면 아무런 고민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그렇게 창조하지 않으셨다. 사람은 사는 의미와 가치와 보람을 누릴 수 있고, 미래와 영원에 대한 소망과 기대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인간다움을 넘어 영적인 차원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영력(Spirituality)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영적인 존재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확인하고 그것으로부터 오는 능력과 가치관과 소망을 소유해야 한다. 사도 바울이 괴로움 가운데서도 기뻐하고, 죽음을 놓고도 오히려 승리의 노래를 부르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확신 그리고 그분과의 관계에 근거한 자기 인식에서 온 영적 능력이었다. 영력은 달리 말하면 제대로 된 신앙에서 얻는 능력이다. 이것은 신앙인, 교회와 목회자의 전문분야이다. 여기에 닥쳐온 뉴 노멀 시대에 세상을 향하여 교회와 신앙인이 감당해야 할 역할의 틈새가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백신 개발은 과학자와 의료인들의 책임이지만, 사회적 병리 현상(팬데믹)의 백신으로서 영력의 개발은 우리 신학자와 목회자들, 그리고 교회의 몫이 더 크다. 신학자와 교회 그리고 목회자들이 멘탈데믹이 구체적 사건으로 실현되기 전에 이 문제를 다루는 방안을 모색해내지 않으면 이 사회는 무섭고 매정하고 철저하게 비인간화된 병든 세상으로 변해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3) 뉴 노멀 시대 – 말씀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한국교회는 이제 말씀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한국교회는 이미 이중적으로 말씀의 시대에 직면하고 있다. ①부흥기가 지나고 쇠퇴기에 접어들었다는 사실과 ②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그것이다. 부흥기가 지나고 접어든 교회의 쇠퇴 현상과 갑자기 불어닥친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는 한국교회를 말씀에 집중해야 하는 새 시대로 몰아가고 있다. 교회가 부흥기를 지나 쇠퇴기에 이르면 성도들은 거의 본능적으로 그리고 집단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은 욕구를 발산하게 된다. 한국교회는 이미 그 상황에 들어와 있다. 뿐만 아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교회 안에 만든 새로운 판짜기의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는 일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는 요구이다. 지난 세월 동안 효과적이고 특화되고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실질적 기능을 수행해온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거의 무력화 되고 오직 예배 하나만 살아남은 것 같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교회의 모든 프로그램이나 모임이 무력화 되어버린 상황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마스크를 쓰고 주일 강단 아래로 성도들이 모이고 있다. 평소에 드리던 예배와는 생소하고 어색하기만 한데도 주일 그 시간이면 가족이 모니터 주위에 둘러앉아 가정에서 온라인 예배를 드리고 있다. 많은 신자들이 인터넷 설교를 찾아 여기저기, 이 사람 저 사람의 설교를 기웃거리며 방황하고 있다.

이유는 한 가지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은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설교자에게는 이제 “세세토록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말해달라는 요구이다. 각양의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기능적 프로그램이나 실용적 행사 대신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내놓으라는 요구 앞에 목회자들이 서 있다. 뉴노멀 시대의 설교를 위한 청중 이해의 요체는 “저들은 말씀을 듣고 싶어 한다”라는 전제이다. 이 요구에 부응하지 않는 설교자는 성도들에게 거부당하게 될 것이다. 아래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온라인 예배(설교)를 고도의 기술력 과시와 세련미 넘치는 디자인에 치중하지 말고 내용을 어떻게 충실한 말씀으로 채울 것인가에 몰입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3. 뉴-노멀 시대의 목회와 설교

목회를 수행하는 결정적인 방편이 무엇인가라는 관점에서 보면 뉴-노멀 시대의 목회는 말씀목회이다. 그러므로 뉴-노멀 시대의 목회자는 말씀목회 전문가가 되어야만 한다.

1) 하나님과 온택트

언택트로 특징 지어지는 뉴 노멀 시대의 살길은 하나님과 온택트에 있다. 뉴 노멀 시대는 언택트 세상을 초래하였지만, 역설적이게도 하나님과 온택트를 촉발하는 기회가 되고 있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이제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고 한다. 그 말은 곧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구체적인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임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곧 하나님의 말씀과 온택트이다. 이런 점에서 뉴-노멀 시대의 목회는 이제 주특기 목회가 아니라 말씀 목회의 시대다. 뉴노멀시대의 목회자는 무엇보다도 말씀 목회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2) 말씀에 올인 하는 프로 설교자

뉴-노멀 시대의 목회자는 말씀 사역이라는 한 가지 방면을 전문적이고 집중력 있게 수행해야 한다. 말씀을 어떻게 상황에 따라, 대상에 따라, 여건에 따라 최적의 맞춤 설교로 수행할 것인지를 연구하고 고민하고 수행하는 일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몰입해야 한다. 지금까지 목회자의 중요한 기능은 효과적이고 흡인력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교회 안에서 운영하는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획력, 프로그램 운용 능력, 다재다능한 재능, 팔방미인 등이 능력 있는 목회자상(像) 이었다. 그러나 뉴 노멀 시대의 목회자는 한 가지 일, 곧 말씀 사역(설교사역)에서 교인들에게 특별한 인정과 신뢰를 받는 전문가여야 한다. 제대로 된 신자를 길러내기 위한 효과적인 말씀 사역의 틈새를 발굴해 내는 일에 몰입해야 한다.

3) 말씀의 일상화 목회

강단에서 행하거나 그룹에서 가르치는 자기 자신의 설교만이 아니라, 말씀의 일상화를 실현하기 위한 목회방침과 말씀이 최우선인 교회 분위기 조성과 교회 체질을 개발해야 한다. 실례하나를 들어보고자 한다. 작은 규모의 세 교회에서 진행하는 성경경시대회 성경읽기가 혹시 참고가 될 듯하여 이곳에 공개한다. 이 프로그램은 성도들이 성경 전체를 읽도록 지원하고자 하는 기업가 장로님 한 분의 지원을 받아 행하고 있다. 11개월 동안 신약성경 전체를 읽도록 월별로 범위가 정해진 일정표에 따라 성경을 읽고 월말에 성경경시대회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먼저 교인들을 설득하여 교회의 성경경시대회 참가 신청을 받아 그룹을 형성한다. 경시대회 문제는 주로 성경구절 괄호 넣기 방식으로 출제하여 최대한 여러 번 주어진 성경을 읽도록 유도한다.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관심 있는 사람은 주어진 범위를 10-20회 이상 읽게 된다. 그리고 담임 목사는 해당 월에 주어진 성경책을 본문 삼아 4회에 걸쳐 주일 오후 예배 등에 전교인에게 설교를 하여 그 책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참가자를 격려하고, 교회 전체에 성경읽기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경시대회 결과에 따라 상금 등 시상을 하여 격려한다. 신약 읽기가 끝나면 25개월에 걸친 구약 읽기 경시대회 일정이 짜여져 있어서 성경 읽기 경시대회를 계속 이어갈 수 있다.

4) 성경사경회

담임목사가 인도하는 성경사경회를 진행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우선 그동안 진행해 왔던 특별기도회나 특별집회 등 다양한 이벤트성 행사들을 성경사경회로 바꾸는 것이다. 그리고 저명한 강사를 초청하여 사경회를 진행하지 않고 담임 목사가 직접 인도한다. 성도들은 외부에서 온 손님 강사에게 말씀을 들으며 은혜를 받고, 담임 목사는 강사 접대와 교인 동원에 전념하는 것은 좋지 않다. 교인들이 은혜를 받도록 한 강사는 집회 끝나고 돌아가 버리고, 목회는 여전히 담임목사가 책임져야 하는 것은 여러 면에서 효과적이지도 않다. 물론 그렇지 않아도 설교의 횟수가 지나치게 많은 담임목사가 성경사경회까지 인도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담임목사들이 그룹을 지어 한 책을 정하여 함께 연구하며 설교 준비를 한 다음 각 교회에서 동일한 내용으로 각각 적합한 시기를 정하여 사경회를 열수도 있다. 담임목사가 직접 인도한다는 점에서 교인들 사이에 새로운 분위기가 조성될 수도 있다. 사실, 설교자하우스에서 성경사경회를 직접 인도하고자 하는 담임 목회자들을 위하여 성경사경회를 함께 준비하는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기도 하다.

5) 설교의 지향점 혹은 주제

뉴-노멀 시대의 목회자는 현장에서 직면해야 하는 대상인 교인들과 그들이 처한 사회적 상황의 근본적이고 공통적인 문제가 바로 비인간화되어버린 상태로부터 겪는 공황 상태요 고통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해야 한다는 점은 앞에서 이미 강조하였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사람같지 않게 느껴지고, 자신의 삶이 사람 사는 것 같이 느껴지지 않는 현상에 사로잡혀 사는 것이다. 앞에서 이미 언급한대로 외로움, 고독감, 유기감, 좌절과 절망감, 막막함, 고립감, 무력감, 분노 등등이다. 짚자는 이러한 현상의 본질을 인간의 비인간화 감정과 비인간화 현실이라고 규정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살아가는 청중을 향하여 강단에 서는 설교자라면 어떤 자세로, 그리고 무엇을 우선적 주제로 설교할 것인지 확실해진다.

(1) 하나님의 친밀한 동행을 드러내는 설교
하나님과의 친밀감과 친근감을 확인하고 경험하고 의존하는 데에 설교의 초점을 맞춘 설교를 수행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예수님의 방법이기도 하다. 예수님이 고별 설교에서 근심에 빠진 제자들에게 하신 첫 마디는 결국 하나님, 그리고 예수님과의 동행을 믿고 확인하고 붙잡으라는 것이었다. 고별설교 마지막 마디에 예수님 자신의 경우를 토로하면서 보여주신 것도 하나님과의 동행을 확인하고 누리면서 자신이 당한 버려짐과 근심의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이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 14:1). 그 믿음의 핵심은 구체적으로 하나님과의 동행을 믿고 확신하고 붙잡으라는 뜻임을 확인시켜주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2-3). 그리고 고별설교 마지막에 가서는 예수님 자신이 그렇게 하고 있음을 스스로 보여주셨다.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2-33).

(2) 사람 사이의 공감과 긍휼을 주제로 하는 설교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공감과 긍휼에 초점을 맞춘 주제의 설교를 우선적으로, 그리고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공감은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동조함으로서 정서적으로 한편이 되는 것이다. 긍휼은 공감이 만들어내는 자신의 희생을 통하여 상대방을 일으켜 세우는 행위이다. 예수님은 지옥에 갈 인간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며 혀를 차고 안타까와 하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있는 삶의 현장으로 내려오셨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제3자적 동정심이 아니라, 현장에서 함께 고통을 당하셨다. 그리고 자기의 생명을 내어놓아 인간을 살리셨다. 히브리서는 예수님의 이러한 처신을 그의 체휼이라고 한다. 예수님의 체휼은 입장을 같이하는 공감과 자신의 희생으로 일으켜 세우는 긍휼을 포함한다. 뉴 노멀 시대에 비인간화로 특징지워지는 맨탈데믹 현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서로 서로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교회에 대한 이해에까지 확장되어 결국 뉴 노멀 시대의 교회의 본질과 역할에 대한 이해에도 변화를 가져 올 것이며 그 핵심은 공교회론이 될 것임은 이미 앞에서도 언급하였다.

(3) 본질을 명확히 드러내는 설교

뉴 노멀 시대에는 성도들의 본능적 관심과 욕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다는 점에 집중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성경본문 자체를 깊이 있게 드러내고 성경 본문이 말하는 본질을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춘 설교를 해야 한다. 우리의 필요나 목적을 미리 결정하여 놓고 어떻게 하면 그것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인가에 집착하여 본문에서 그것을 성취할 수단을 찾아 제시하는 방식의 설교는 이제 그만 두어야 한다. 대표적으로 하나님을 앞세우는 설교 같지만 많은 경우에 우리는 우리의 목적 성취를 위하여 하나님을 동원하는 설교를 함으로써 하나님 자신을 우리가 확인하고 믿고 고백하고 그에 맞추어 우리 삶을 조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우리의 필요 충족을 위하여 하나님을 동원하는 식의 설교를 해온 것이 사실이다. 하나님을 동원하는 설교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인공이 되는 설교가 본질을 명확히 드러내는 설교이다. 이러한 자세는 본문이 말하는 다른 주제들에 대하여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본문 중심의 설교에 집중하는 설교가 뉴 노멀 시대에 청중의 집중력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4. 뉴-노멀 시대의 온라인 설교

1) 온라인 예배에 대한 논란

이 글에서 다루는 온라인 설교는 온라인의 가상공간에서 진행하는 교회의 예배를 전제로 그 가운데 행해지는 설교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온라인 예배라는 예배 방식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1) 예배론 논쟁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초기에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온라인 예배의 정당성과 가능성을 주제로 한 논란에서 다수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의 태도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대부분 예배론에 근거한 신학과 신앙적 입장에서 볼 때 온라인 예배는 정당한가, 가능한가를 따지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접근하곤 하였다. 일부에서는 순교적 신앙의 보존 차원에서 어떤 경우에도 현장의 대면 예배를 드려야 된다는 입장을 취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직면한 사안의 본질은 예배론이나 신앙 사수의 문제가 아니다. 교회가 이전에 경험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였으며 그에 대한 교회의 대응책을 내어놓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이러스의 감염으로 사회 전체가 생명의 위험에 처했다는 것이고, 감염확산의 결정적 요인이 사람들이 서로 만나는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교회가 교회이기 위한 최우선의 본질적인 일은 예배를 드리는 것이고, 예배는 하나님의 백성이 한곳에 모여 예배공동체를 이루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기 위하여 예배공동체로 모이지 않으면 교회가 아니고, 교회이기 위하여 예배공동체로 모이면 사회로부터 교회로 인정받을 수 없는 무책임한 집단이 될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예배공동체로 존재하는 것과,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는 것이 상반되어 양립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고, 이것은 교회의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사항인 처지에 교회가 이른 것이다.

이 상황에서 우리의 물음은 교회가 어떻게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면서 동시에 예배공동체로 존재할 수 있는가를 묻고 그에 대한 답을 찾는 고민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얻어낸 돌파구가 온라인 예배였다. 굳이 온라인 예배가 아니어도 교회가 예배공동체로 모이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일부에서 온라인 예배를 들고나온 것이 아니었다. 이런 점에서 전통적인 예배론을 근거로한 논쟁은 사안의 본질을 정확하게 다룬 것이라고 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2) 실용성 논쟁
목회자들 사이에서는 온라인 예배를 인정함으로써 발생할 후유증, 곧 현장 예배 참여자의 감소 문제와 교회 소속감의 저하, 인격적 공동체로서 수행할 신앙 교육의 비효율성, 그 외에도 온라인 예배를 정상적인 예배 방식으로 인정할 경우 파생될 다양한 후유증을 염려하여 온라인 예배를 교회의 정상적인 예배로 수행하는 것에 대한 논쟁이 일어나고 있다.

(3) 피할 수 없는 현실
온라인 예배는 예배 여건에 있어서 뉴 노멀로 정착하고 있다. 수많은 교회들에게 이제는 피할 수 없는 예배의 한 방식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온라인 예배는 정당한가 아닌가, 드릴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예배론의 본질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현실 상황에 적실하게 효과적으로 잘 드릴 것인가의 문제로 귀착되고 있다. 이 현실이 우리에게 주는 새로운 기회와 창의적 변신의 틈새가 무엇인지 찾아내는 방식으로 대응해야 한다. 내놓은 온라인 예배라는 해결책이 유발하는 또 다른 문제는 그 문제의 해결책을 다시 찾아 나서는 것으로 대응해나가야 할 것이다.

5. 뉴-노멀 시대의 온라인 설교를 위한 제안

대면 예배의 현장 설교와 비대면 예배의 온라인 설교는 같은 예배라는 본질적인 공통점을 가진다. 그러나 대상이나 환경이나 상황 등에서 전혀 다른 특성을 갖는다는 점을 간과해서도 안된다. 앞으로는 목회자들의 호불호와 상관없이 온라인 예배는 예배의 독자적인 한 형태로 정착할하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온라인 설교를 수행하는 목회자가 기억해야 할 사항들이 있다.

1) 온라인 예배에 대한 이해와 자세

(1) 온라인 설교는 온라인 예배를 전제로 한 것이므로 온라인 예배에 대한 이해와 자세를 어떻게 갖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온라인 예배가 절대다수의 교회에서 필수적인 예배 방식이 된 결정적인 계기는 코로나바이러스가 몰고온 뉴 노멀시대 현상이다. 그러나 온라인 예배는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를 극복한 이후에도 여전히 예배의 보편적인 한 방식으로 존재하게 될 것이다. 온라인 예배는 성도들을 현장 예배에 나오게 하는데 큰 장애물이며, 그러므로 가능한 한 온라인 예배는 비중을 줄이거나, 아예 시행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생각은 뉴 노멀시대의 상황에서는 바람직하지도 않고 현실적이지도 않다. 그러므로 목회자들은 온라인 예배와 설교에 대하여 적극적인 입장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 가상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온라인 예배는 교회 운영으로 보든지, 인격적 신앙 공동체 형성으로 보든지, 개인의 신앙훈련과 영적 성장으로 보든지 부정적인 여건을 조성하므로 가능하면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부정적인 입장보다는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예배 여건으로 주어진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그러한 일들을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며 돌파구를 찾아나가는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이다.

(2) 현장 예배를 드리는 교인 수의 감소가 온라인 예배의 후유증이나 부작용이라는 이해를 근거로 대책을 강구하려는 데 중점을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교인들을 현장으로 돌아오게 하려는 데 중점을 둘 일이 아니라, 평소보다는 현격히 줄어든 소수일지라도 현장 예배에 참석한 교인들이 어느 때보다도 예배의 은혜를 누리게 하려는 데 집중해야 한다. 목회자의 설교가 어떻게 달라졌고 현장에서 드리는 예배가 어떻게 은혜가 넘치는 현장으로 변하고 있는지 예배에 참여한 교인들을 통하여 순식간에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교인들에게 소식이 전해질 것이고, 그들은 다시 이전의 예배 현장을 찾아서 발걸음을 옮기게 될 것이다. 이것은 목회자들이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과 수고를 설교와 예배에 쏟아야 할 것을 의미한다.

(3) 온라인 예배를 현장 예배의 부차적인 선택이거나 혹은 현장에 오지 않는 교인들을 위한 차선의 서비스라는 의식으로 진행하는 것은 삼가는 것이 좋다. 온라인 예배자들은 현장 예배의 제 3자이거나 그 현장을 중계받는 입장으로 자신을 인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현장 예배를 온라인으로도 중계하면서 “이곳에 오지 못하고 각 가정에서 예배드리는 성도님들에게도…. ” 하는 식의 멘트를 삼가는 것이 좋다. 여건이 허락한다면 현장 예배와 온라인 예배가 각각 독자적 성격과 스타일을 갖게 하여 특화 혹은 독자화 하는 것이 필요하다. 차라리 현장 예배와 온라인 예배를 각각 다른 시간에 별도로 갖고 온라인 예배는 교회당에 오지 못하고 흩어져 있는 교인들에게 최적화한 독자적 예배로 드리는 방안을 모색해보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이것 역시 목회자가 설교대상의 상황에 따라 최적화된 설교를 수행하려는 의욕과 열심을 가질 것을 전제로 한다. 이미 온라인용 예배를 독자적으로 진행하는 교회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소문이 들리기도 한다. 이것은 교회와 성도들의 이분화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지만 그 문제는 다른 방식으로 극복해나가는 방안을 강구할 수 있을 것이다. 온라인 설교를 떠도는 방랑자가 되지 않고 본 교회에 소속된 교인임을 확인할 장치를 온라인 예배에 설치해야 한다.

2) 온라인 설교의 방식에 대한 제안

(1) 온라인 설교를 고도의 기술 구현과 세련되고 멋있는 디자인 구성에 치중함으로써 예배나 설교 영상의 작품성을 성취하려는 시도는 지혜롭지 못하다. 대형 회사의 영상 제작 전문가들의 불만을 전해 들은 적이 있다. 영상의 형식이나 방식이 아니라 내용에 힘써달라는 것이었다. 현장 설교든 온라인 설교든 설교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 내용, 곧 말씀을 어떻게 펼쳐낼 것인가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교인들은 멋진 영상 작품이 아니라, 살아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2) 온라인 설교에서 설교자가 관심을 가져야 할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는 설교 시간이다. 온라인 설교는 현장 설교보다 시간을 훨씬 더 짧게 해야 한다. 온라인 예배에서는 설교에 싫증을 느낀 청중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떠나지 않을 장치가 전혀 없다는 점을 의식해야 한다. 실제로 온라인 설교 접속자들의 평균 접속유지 시간이 10분 이내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상황과 설교자의 역량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온라인 설교는 20분 정도가 좋겠다는 것이 경험과 관찰에서 온 필자의 개인적인 판단이다.

(3) 온라인 설교는 그 본질이 영상설교이므로 회중 접근방식이 달라야 한다. 온라인 설교에서는 시종일관 메신저 중심의 화면 구성으로 진행하는 것이 덜 효과적일 수 있다. 온라인 설교에서는 눈앞에 보이는 것이 모니터 화면이 전부이므로 당연히 미디어 중심일 수밖에 없다. 메신저(설교자) 화면, 텍스트 화면, 이미지 화면을 효과 있게 배치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온라인 설교가 현장 설교와는 별도로 기획되고 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3) 온라인 설교의 내용/주제에 대한 제안

(1) 앞에서 뉴 노멀시대에는 교인들로부터 말씀을 듣고 싶은 욕구가 발산하면서 말씀이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였다. 현장 예배든 온라인 예배든 설교는 그 내용과 주제가 본문 말씀에 집착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그동안 한국교회 설교는 본문 이탈 현상이 강했다는 비판을 감안한다면 뉴 노멀 시대의 설교야말로 본문 말씀에 집착하는 설교이어야 한다.

(2) 앞에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초래한 멘탈데믹이라 불리는 심리적 공황 상태의 본질은 비인간화, 곧 인간이 인간다움을 느낄 수 없고, 누릴 수 없다는 문제이며, 수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현상을 경험하며 일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설교자들은 이러한 위기 상황을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 앞에 말씀을 들고 서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하나님과 친밀감과 동행을 확인하고 경험하고 의존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 설교, 공감과 긍휼을 누리고 실천하도록 이끄는 설교, 그리고 성경이 말하는 신자의 정체성과 구원, 믿음, 소망, 영광, 능력 등등의 성경적 본질을 밝혀주는 본질 설교 등은 이 시대 설교의 중요한 주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3) 온라인 설교 예배자들은 이동이 자유롭고 심하다는 현실을 감안하여 지속적으로 설교를 찾아올 수 있도록 잘 기획된 시리즈 설교는 지속적인 설교를 지속적으로 듣게 하는 하나의 방안일 수 있다.

나가는 말

한국교회는 위기에 처했다는 진단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사실이 한국교회는 망하거나 끝나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한국교회는 드디어 본질로 돌아가고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갈 절호의 기회를 부여받고 있다. 목사가 목사다워지고 신자가 신자다워지고 교회가 교회다워질 절호의 기회에 직면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붙잡으라고 한국교회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계신다.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는 가장 강력한 기회는 목회자의 설교이다. 이 점에서 이제 설교자들은 어느 시대의 목회자 못지않게 놀라운 기회와 두려운 책임을 동시에 걸머지고 있다. 한국교회는 하나님께서 짜놓으시는 새로운 판에 걸맞게 우리 자신을 새롭게 하여 멋진 변화의 터전을 마련할 기회를 맞고 있고, 이 기회를 붙잡을 결정적인 위치에 우리 설교자들이 서 있다.

* Trinity Global University 특강 강의안

* 참고자료 – 뉴 노멀 시대의 교회와 목회(정창균 외 공저), 목회와 신학 2021. 3월호 기고문(온라인 설교)

정창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