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지치게 하는 코로나19 사태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 와중에도 여지없이 뜨거운 여름이 찾아왔다. 한낮에는 온도가 치솟아 거리 아스팔트는 열기로 이글거린다. 일반적으로 교회는 이 시기에 순, 목장, 구역 등의 각종 소그룹 및 제자훈련과 같은 교육 프로그램이 방학에 들어간다. 교회는 여름 성경학교 및 각 부서 수련회로 분주하다. 성도들은 휴가를 통해 6개월간 바쁘게 살아온 삶에 쉼표를 준다. 그러나 계속되는 코로나의 위협 속에 이런 일상의 모습들에도 변화가 예고된다. 코로나 시대 속에서 효과적인 교회의 여름 사역을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고 시행해야 하는지 함께 살펴보자.

신학의 내용을 잘 이해시키고
그것을 줄줄줄 암송하게 하고
각종의 시험을 통하여 그것을
정확하게 재진술하는가를
확인하는 것이 전부인 신학교육은
이제 그만 두어야 한다.

신학을 학습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였으면
신학적 사고를 할 수 있어야 하고,
신학적 사고를 하여 나름의 결론을 얻었으면
그대로 실천하는 데로 나아가야 한다.

기회와 실천이 늘 한 발짝씩
어긋난다는 것을 확인하고
치밀어 오르는 회한과
억누르는 무기력증에
가슴이 답답해지곤 합니다.

할 수 있을 때는 그것을 모르고,
알았을 때는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인생이려니…
스스로를 달래보며 넘어갑니다.

살아온 길을 돌아보는 것은 단순히 지나간 과거를 추억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 대한 진지한 자기 성찰입니다. 살아갈 길을 내다보는 것은 단순히 비전이라는 명분으로 소망사항 가득한 장밋빛 꿈을 품어보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것은 시대를 분별하는 것입니다. 살아온 길을 분별하면 과거가 현재로 이어집니다. 살고 있는 시대를 분별하면 현재가 미래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한 줄로 잇대어지게 됩니다. 거기에 반성이 있고, 책임이 있고, 기대가 있게 됩니다.

상처받은 자연인 나를, 하나님을 맛본 신앙인 내가
달래고 가르치고 설득하는
긴 싸움을 그렇게 이어갑니다.
이것을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 주님을
변함없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자기의 신학을 사랑하는 사람은
수백 년 전 문서 한 웅큼 들고 서서
현실교회에 대하여 비평과 비난,
그리고 훈수 넘쳐나는 선생노릇으로 일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신학자는
현실교회의 문제와 약점을 고민하고 교감하며
대안을 내려고 괴로워합니다.

정암 박윤선은 나의 스승입니다. 사실 그는 나 뿐 아니라, 오랜 세월동안 직간접으로 한국교회의 수많은 목회자들의 선생님입니다. 곁에 손잡고 함께 있지 않아도, 눈앞에 얼굴 마주 보고 있지 않아도, 그 어른을 떠올리기만 해도 가르침이 되는 선생님을 가슴에 품고 산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복입니다. 그 선생님 생각이 나면, 이렇게 살지 말아야지 하고 자기성찰이 되고, 그 선생님을 떠올리면 나도 그렇게 살아봐야지 하고 격려가 되는 어른을 우리가 사는 동안 다만 한 두 분이라도 마음에 품고 살 수만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복된 일입니다.

어느 정치평론가의 말대로
“‘본 대로’ 기록했다고 사실이 되는 것도 아니고,
‘들은 대로’ 말했다고 진실이 되는 것도 아니다.”
어떤 눈으로 보았으며,
어떤 귀로 들었고,
무엇을 근거삼아 결론을 내렸는지,
그것이 문제다.

예수님은 마지막 고별설교에서
선생님이 죽는단 말씀 듣고
근심에 빠진 제자들에게
기도하란 말씀을
네 번이나 하셨다.

근심에 빠진 건 그 때 그들만이 아니다.
오늘 우리의 근심은 더 깊고 더 크다.
문제의 해결에 살 길이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도에 살 길이 있다.

일상화된 사회적 거리두기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마음의 거리 두기로 이어지고,
그것은 다시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영적 거리두기로
우리를 몰아가게 될까봐
걱정이 앞을 가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