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이런데 언제까지 이러실 거냐고 따져 묻는 하박국에게 결국 하나님은 이렇게 되물으신 셈이었다. 세상이 이런데 너는 어떤 길을 갈 거냐고. 악인들로 세상이 뒤집어지고 있을 때 너는 어떤 길을 갈 거냐고. 그리고 하나님이 스스로 주신 답은 그것이었다. “의인은 그래도 제 길을 간다!” 세상이 어떻게 뒤집어져도, 신자는 여전히 제 길을 간다!

이렇게 보면,
예수님이 하라 하신 『기도』는
예수님을 다시 만날 때 까지
떨어져 살아야 할
제자들에게 주시는
생존의 방편이다.

기도는 단순히
신앙의 덕목 가운데 하나가
아니다.

목사의 답에 대한
신학적 입장이 달라서가 아니라,
이 상황에서 그가 취한
철저하게 비인간화 되고
매정하게 객관화 된
그 목회자의 태도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그 후로 나는, 목회란 무엇인가,
목회자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상황에 대처하는 우선적 반응은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놓고
오래고 깊은 고민을 했습니다.

명분이 확실한 그들의 요구는, 그들이
이렇게나 합리적이고, 논리가 치밀하고,
기획력이 완벽하고, 준비성이 철저한
유능한 지도자들이란 증거가 아니었다.
하나님을 그렇게나 못 믿고 있다는
불신앙의 증거일 뿐이었다.

하나님 자신의 해석에 의하면
그것은 불신앙일 뿐 아니라,
하나님을 멸시하는 악행일 뿐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렇게 진노하신 것이다.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 내 귀에 들린 너희 말 그대로
몇 년이 걸리든 이 들판에서 다 죽게 해주마!”

“말을 잘 들어주는 연습이 필요해.
고쳐주려 하지 말고,
들어주려 해봐.
그러면 친구가 돼.

말도 안 되는 얘기인데도
끄덕이며 들어주니까 친구이고,
맞는 말인데도 시비만 거니까
원수가 되는 거야.”

우리를 지치게 하는 코로나19 사태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 와중에도 여지없이 뜨거운 여름이 찾아왔다. 한낮에는 온도가 치솟아 거리 아스팔트는 열기로 이글거린다. 일반적으로 교회는 이 시기에 순, 목장, 구역 등의 각종 소그룹 및 제자훈련과 같은 교육 프로그램이 방학에 들어간다. 교회는 여름 성경학교 및 각 부서 수련회로 분주하다. 성도들은 휴가를 통해 6개월간 바쁘게 살아온 삶에 쉼표를 준다. 그러나 계속되는 코로나의 위협 속에 이런 일상의 모습들에도 변화가 예고된다. 코로나 시대 속에서 효과적인 교회의 여름 사역을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고 시행해야 하는지 함께 살펴보자.

신학의 내용을 잘 이해시키고
그것을 줄줄줄 암송하게 하고
각종의 시험을 통하여 그것을
정확하게 재진술하는가를
확인하는 것이 전부인 신학교육은
이제 그만 두어야 한다.

신학을 학습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였으면
신학적 사고를 할 수 있어야 하고,
신학적 사고를 하여 나름의 결론을 얻었으면
그대로 실천하는 데로 나아가야 한다.

기회와 실천이 늘 한 발짝씩
어긋난다는 것을 확인하고
치밀어 오르는 회한과
억누르는 무기력증에
가슴이 답답해지곤 합니다.

할 수 있을 때는 그것을 모르고,
알았을 때는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인생이려니…
스스로를 달래보며 넘어갑니다.

살아온 길을 돌아보는 것은 단순히 지나간 과거를 추억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 대한 진지한 자기 성찰입니다. 살아갈 길을 내다보는 것은 단순히 비전이라는 명분으로 소망사항 가득한 장밋빛 꿈을 품어보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것은 시대를 분별하는 것입니다. 살아온 길을 분별하면 과거가 현재로 이어집니다. 살고 있는 시대를 분별하면 현재가 미래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한 줄로 잇대어지게 됩니다. 거기에 반성이 있고, 책임이 있고, 기대가 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