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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좋은 것

한참 있다가 열 살 난 딸아이가 다시 침묵을 깨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아빠,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면 죽는 것도 좋은 거지요?” 순간 아빠는 가슴이 울컥해지며,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열 살 난 내 딸이, 열 살 난 내 딸이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다니. 아이는 아마도 어쩌면 엄마를 잃을런지도 모를 상황을 나름대로 대비하는 심산 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빠는 그 어린 것이 대견했습니다.

포기하지 말라!

신자답기에는 턱없이 모자라게 죄에 넘어지고, 악에 이끌리며 길모퉁이 어디선가 헤매면서도 여전히 신자의 명패 달고 갈지(之) 자라도 한 발작씩 앞으로 가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나를 포기 않으시는 그 은혜 때문입니다. 포기하지 않으시는 것은 우리의 믿음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예배자

대면 예배를 드리지 않는 출석교회에 분노하며 보란 듯 다른 교회 그룹지어 찾아다니는 서울의 그 예배자들 보다는, 모일 날 사모하며 온라인 예배라도 드리다, 50명 모일 수 있게 된 날이라고 달려나오며 감동과 감사의 떡을 한턱 쏘는 천안의 예배자가 나는 훨씬 더 감동이 되었습니다.

뉴-노멀(New-Normal) 시대(2)- 반전의 아이로니

그런데 충격적인 반전은 이것입니다. 현대문명이 이룬 세계화를 발판삼아 코로나 한 놈이 팬데믹이라는 타이틀을 얻으며 세계를 통일하니, 그간 이룬 위대한 세계화가 일순간에 무효가 되어버렸습니다. 나라마다 장벽을 세워 오갈 수 없고, 개인마다 거리를 벌려 접촉할 수 없습니다. 철저한 지역화, 지독한 개별화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봉쇄라는 이름으로 서로 넘나들 수 없고, 격리라는 이름으로 밖으로 나댈 수 없는 것이 일상인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막히고, 자기 자신에게는 갇히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이 현실에서 확인하는 가슴에 사무치는 사실은 이것입니다. “별 수 없는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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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좋은 것

한참 있다가 열 살 난 딸아이가 다시 침묵을 깨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아빠,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면 죽는 것도 좋은 거지요?” 순간 아빠는 가슴이 울컥해지며,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열 살 난 내 딸이, 열 살 난 내 딸이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다니. 아이는 아마도 어쩌면 엄마를 잃을런지도 모를 상황을 나름대로 대비하는 심산 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빠는 그 어린 것이 대견했습니다.

포기하지 말라!

신자답기에는 턱없이 모자라게 죄에 넘어지고, 악에 이끌리며 길모퉁이 어디선가 헤매면서도 여전히 신자의 명패 달고 갈지(之) 자라도 한 발작씩 앞으로 가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나를 포기 않으시는 그 은혜 때문입니다. 포기하지 않으시는 것은 우리의 믿음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예배자

대면 예배를 드리지 않는 출석교회에 분노하며 보란 듯 다른 교회 그룹지어 찾아다니는 서울의 그 예배자들 보다는, 모일 날 사모하며 온라인 예배라도 드리다, 50명 모일 수 있게 된 날이라고 달려나오며 감동과 감사의 떡을 한턱 쏘는 천안의 예배자가 나는 훨씬 더 감동이 되었습니다.

뉴-노멀(New-Normal) 시대(2)- 반전의 아이로니

그런데 충격적인 반전은 이것입니다. 현대문명이 이룬 세계화를 발판삼아 코로나 한 놈이 팬데믹이라는 타이틀을 얻으며 세계를 통일하니, 그간 이룬 위대한 세계화가 일순간에 무효가 되어버렸습니다. 나라마다 장벽을 세워 오갈 수 없고, 개인마다 거리를 벌려 접촉할 수 없습니다. 철저한 지역화, 지독한 개별화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봉쇄라는 이름으로 서로 넘나들 수 없고, 격리라는 이름으로 밖으로 나댈 수 없는 것이 일상인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막히고, 자기 자신에게는 갇히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이 현실에서 확인하는 가슴에 사무치는 사실은 이것입니다. “별 수 없는 인생!”

뉴-노멀(New-Normal) 시대(1)- 우리가 취할 첫 동작

현상의 아픔, 고통, 슬픔, 두려움, 답답함, 원통함을 토로하는 것이 새로운 판으로 가는 출발점이요, 소망으로 가는 시작점이다. 아프다고 말하며 실컷 울라. 답을 모르겠다고 하소연하며 다시 울라. 하나님 어디 계시냐고 울며 하소연을 하라. 그렇게 답답하고 쓰린 마음을 실컷 털어놓으라. 그것이 가장 중요한 첫 출발점이어야 한다. 자기 자신에게나 남에게나 신앙적이고 싶은 욕구가 너무 강한 나머지 하나님께 자신의 아픔을 털어놓는 새 출발의 현장을 무시하거나 지나쳐버리는 잘못을 범하지 않아야 한다.

익숙해져야 할 것

“이제 우리는 잊혀지는 일에 익숙해지는 연습을 해야 해요.” 수년 전에, 은퇴를 얼마 남겨놓은 존경하는 목사님이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다가 문득하신 말씀이었습니다. 평생 목회한 초대형 교회 은퇴를 그런 맘으로 준비하며 당신 자신을 채비하는 말로 들렸습니다.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나도 미리 한 수 배웠습니다.

자녀를 위한 기도

나는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나를 더 사랑하신다는 확신이 어느 시절부터인가 몸에 배어 있었다. 그런데 자녀들에 대하여도 그 확신이 몸에 배게 되었다. 그런 마음이 몸에 배인 탓인지, 아이들이 지독한 어려움에 힘들어할 때, 어떤 힘도 해결책도 될 수 없는 무능력한 아빠이기 일쑤였지만, 그래서 속수무책으로 아이의 하소연과 신음소리를 듣고만 있어야 하는 무기력한 아빠였지만, 마지막에는 늘 그렇게 말하곤 했다.

절대 소망의 기회

설교자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에 다리를 놓는 사람입니다. 설교자의 다리 놓기는 본문에서 만나는 “낯선 신세계”와 청중이 살아가는 “지금 이곳”의 세계를 연결하는 일입니다.

엄 마

지금이 어떤 시국인데 신학자라는 사람이 개인적인 감상에 빠져 영양가 없는 이딴 소리를 늘어놓아 민폐를 끼치냐고요? 글쎄요. 교회가 닥친 현상을 보며 속이 답답하고, 앞일도 막막한데, 장대비까지 퍼부으니, 갑자기 돌아가신 우리 엄마 생각이 났습니다. 내일도 주일인데... 이 땅의 목회자들을 응원합니다. 파이팅!

최상의 것

신자에게는,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어서 다른 사람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경우란 없다. 신자가 다른 사람을 품고 기도하는 것은 해줄 것이 없으니 그것이라도 하는 최소한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최상의 것이다. 모두가 불안하고 힘든 지금은, 어쩌면 서로를 품고 기도해주며 우리의 부요함을 마음껏 발산할 절호의 기회일는지 모른다. 우리는 나누어줄 아무 것도 없는 사람들이 결코 아니다.

그래도 의인은 제 길을 간다

세상이 이런데 언제까지 이러실 거냐고 따져 묻는 하박국에게 결국 하나님은 이렇게 되물으신 셈이었다. 세상이 이런데 너는 어떤 길을 갈 거냐고. 악인들로 세상이 뒤집어지고 있을 때 너는 어떤 길을 갈 거냐고. 그리고 하나님이 스스로 주신 답은 그것이었다. “의인은 그래도 제 길을 간다!” 세상이 어떻게 뒤집어져도, 신자는 여전히 제 길을 간다!

살 길

이렇게 보면, 예수님이 하라 하신 『기도』는 예수님을 다시 만날 때 까지 떨어져 살아야 할 제자들에게 주시는 생존의 방편이다. 기도는 단순히 신앙의 덕목 가운데 하나가 아니다.

사람 도리

목사의 답에 대한 신학적 입장이 달라서가 아니라, 이 상황에서 그가 취한 철저하게 비인간화 되고 매정하게 객관화 된 그 목회자의 태도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그 후로 나는, 목회란 무엇인가, 목회자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상황에 대처하는 우선적 반응은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놓고 오래고 깊은 고민을 했습니다.

열두 정탐군 이야기(2)

명분이 확실한 그들의 요구는, 그들이 이렇게나 합리적이고, 논리가 치밀하고, 기획력이 완벽하고, 준비성이 철저한 유능한 지도자들이란 증거가 아니었다. 하나님을 그렇게나 못 믿고 있다는 불신앙의 증거일 뿐이었다. 하나님 자신의 해석에 의하면 그것은 불신앙일 뿐 아니라, 하나님을 멸시하는 악행일 뿐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렇게 진노하신 것이다.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 내 귀에 들린 너희 말 그대로 몇 년이 걸리든 이 들판에서 다 죽게 해주마!”

친 구

“말을 잘 들어주는 연습이 필요해. 고쳐주려 하지 말고, 들어주려 해봐. 그러면 친구가 돼. 말도 안 되는 얘기인데도 끄덕이며 들어주니까 친구이고, 맞는 말인데도 시비만 거니까 원수가 되는 거야.”

코로나19 시대 속 교회 사역의 여름 나기

우리를 지치게 하는 코로나19 사태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 와중에도 여지없이 뜨거운 여름이 찾아왔다. 한낮에는 온도가 치솟아 거리 아스팔트는 열기로 이글거린다. 일반적으로 교회는 이 시기에 순, 목장, 구역 등의 각종 소그룹 및 제자훈련과 같은 교육 프로그램이 방학에 들어간다. 교회는 여름 성경학교 및 각 부서 수련회로 분주하다. 성도들은 휴가를 통해 6개월간 바쁘게 살아온 삶에 쉼표를 준다. 그러나 계속되는 코로나의 위협 속에 이런 일상의 모습들에도 변화가 예고된다. 코로나 시대 속에서 효과적인 교회의 여름 사역을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고 시행해야 하는지 함께 살펴보자.

좋은 선생

신학의 내용을 잘 이해시키고 그것을 줄줄줄 암송하게 하고 각종의 시험을 통하여 그것을 정확하게 재진술하는가를 확인하는 것이 전부인 신학교육은 이제 그만 두어야 한다. 신학을 학습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였으면 신학적 사고를 할 수 있어야 하고, 신학적 사고를 하여 나름의 결론을 얻었으면 그대로 실천하는 데로 나아가야 한다.

* 회한/悔恨

기회와 실천이 늘 한 발짝씩 어긋난다는 것을 확인하고 치밀어 오르는 회한과 억누르는 무기력증에 가슴이 답답해지곤 합니다. 할 수 있을 때는 그것을 모르고, 알았을 때는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인생이려니... 스스로를 달래보며 넘어갑니다.

살아온 길, 살아갈 길

살아온 길을 돌아보는 것은 단순히 지나간 과거를 추억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 대한 진지한 자기 성찰입니다. 살아갈 길을 내다보는 것은 단순히 비전이라는 명분으로 소망사항 가득한 장밋빛 꿈을 품어보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것은 시대를 분별하는 것입니다. 살아온 길을 분별하면 과거가 현재로 이어집니다. 살고 있는 시대를 분별하면 현재가 미래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한 줄로 잇대어지게 됩니다. 거기에 반성이 있고, 책임이 있고, 기대가 있게 됩니다.

변함없는 하나님 사랑

상처받은 자연인 나를, 하나님을 맛본 신앙인 내가 달래고 가르치고 설득하는 긴 싸움을 그렇게 이어갑니다. 이것을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 주님을 변함없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더 급한 일

자기의 신학을 사랑하는 사람은 수백 년 전 문서 한 웅큼 들고 서서 현실교회에 대하여 비평과 비난, 그리고 훈수 넘쳐나는 선생노릇으로 일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신학자는 현실교회의 문제와 약점을 고민하고 교감하며 대안을 내려고 괴로워합니다.

박윤선은 지금도 유효한가?

정암 박윤선은 나의 스승입니다. 사실 그는 나 뿐 아니라, 오랜 세월동안 직간접으로 한국교회의 수많은 목회자들의 선생님입니다. 곁에 손잡고 함께 있지 않아도, 눈앞에 얼굴 마주 보고 있지 않아도, 그 어른을 떠올리기만 해도 가르침이 되는 선생님을 가슴에 품고 산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복입니다. 그 선생님 생각이 나면, 이렇게 살지 말아야지 하고 자기성찰이 되고, 그 선생님을 떠올리면 나도 그렇게 살아봐야지 하고 격려가 되는 어른을 우리가 사는 동안 다만 한 두 분이라도 마음에 품고 살 수만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복된 일입니다.

열두 정탐군 이야기

어느 정치평론가의 말대로 “‘본 대로’ 기록했다고 사실이 되는 것도 아니고, ‘들은 대로’ 말했다고 진실이 되는 것도 아니다.” 어떤 눈으로 보았으며, 어떤 귀로 들었고, 무엇을 근거삼아 결론을 내렸는지, 그것이 문제다.

기도

예수님은 마지막 고별설교에서 선생님이 죽는단 말씀 듣고 근심에 빠진 제자들에게 기도하란 말씀을 네 번이나 하셨다. 근심에 빠진 건 그 때 그들만이 아니다. 오늘 우리의 근심은 더 깊고 더 크다. 문제의 해결에 살 길이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도에 살 길이 있다.

거리두기와 거리 좁히기

일상화된 사회적 거리두기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마음의 거리 두기로 이어지고, 그것은 다시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영적 거리두기로 우리를 몰아가게 될까봐 걱정이 앞을 가립니다.

울며 씨를 뿌리는 기쁨

나는 그 쪽지를 들고 당시 한창 연애 중이던 지금의 아내에게 달려갔다. 어머니께서 신학교 가는 것을 허락하셨다는 기쁜 소식을 전했다. 우리는 둘이서 그 쪽지를 읽고 또 읽었다. 그때 어머니께서 일러주셨던 시편의 그 말씀은 우리 부부가 평생 사역자의 길을 걸어오면서 어려운 상황을 만날 때마다 언제나 다시 돌아가 붙잡고 버티는 버팀목이 되었다.

말씀이 답이다

한국기독교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 가운데 하나는 외국 선교사가 입국하기 전에 이미 성경이 먼저 번역되고 보급되었다는 사실이다. 개신교 선교사가 최초로 한국에 들어온 것은 1884년 이었다. 그러나 한국어 성경 번역은 그 이전에 만주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후에 일본에서도 이루어졌다. 만주에서 성경번역에 참여한 한국인 번역자들은 그 이후 성경을 국내에 들여와 보급할 뿐 아니라, 성경 말씀(복음)을 전하는 일에도 힘을 기울였다.

갇힌 세상

우리는 지금 열린 세상에서 닫힌 세상으로, 닫힌 세상에서 다시 갇힌 세상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수난일

아침에 생각하니 어제가 고난주간 수난일 이었던 것을 종일 잊고 있었습니다. 예수님 수난일도 잊고 금식은 커녕 고기까지 먹고... 죄책감도 들고, 내가 참 한심하단 생각도 들고, 사람보기도 미안하단 생각도 들었습니다.

주제 파악

코로나 바이러스가 삽시간에 세계를 통일해버렸습니다. 코로나의 세계 통일로 온 세계가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바이러스의 세계통일은 전적으로 『세계화(Globalisation)』 덕분입니다. 페스트의 유럽화는 국경출입이 자유로운 쥐가 문제였는데 지금 코로나는 세계출입이 자유로운 현대인류가 문제입니다.

목 회

목회는 사람을 책임지는 일입니다. 목회자가 된다는 것은 사람을 책임지는 일에 일생을 거는 사람이 된다는 말입니다. 목회자에게 맡겨진 그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 시점에서 품어보는 생각

예배의 본질을 망치지 않고, 현실교회로서 사회적인 책임을 외면하지도 않아야 합니다. 이전에는 가보지 않은 길이어서 낯설고 혼란스럽지만 이것이 한국교회가 해법을 찾아야 하는 새롭게 주어진 상황이고 기회입니다.

눈물

나에게도 눈물을 주시라고 새벽마다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한 달 남짓 지나던 어느 새벽에 갑자기 말씀 한 구절이 떠오르며 아침 내내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예배는 예배여야 한다

교회의 가장 큰 특징과 특권은 예배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일정한 시간과 특정의 공간 안에서 눈에 보이는 공동체를 이루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행위입니다.

탄식

정부의 요구와 상관없이 교회는 성도들과 사회의 안전에 기여할 책임으로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하여 전문가집단이 제시한 지침을 그대로 따라야 했다.

조심 또 조심

상대방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여 내가 옳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은 유치하고 어리석습니다.

말씀

프랑스의 『광야 박물관』 에는 프랑스 개신교도(위그노)들의 가정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비극

『사회적 거리두기!』 코로나 바이러스가 만들고 전 국민의 생활지침이 되어버린 이 시대의 신조어다.

별 수 없는 인생

돌연변이 바이러스 하나만 휘젓고 다녀도 온 세계가 대책이 없는 이 상황을 보며 인생이란 얼마나 별 수 없는 존재인가를 다시 배운다.

Pretend

학교는 텅 비고 학생들은 보이지 않아도 수업을 알리는 벨은 울리고 교수는 강의실을 찾아 들어간다.

기도하는 바보

양영학 선교사는 1980년 총신 사태 때 졸업반 학생이었다. 혼란과 분쟁과 소요사태가 날로 악화되는 와중에서

선생님 생각

기도를 많이 하시오. 기도를 많이 해야 돼. 기도를 많이 하라구! 신학교 졸업을 앞둔 사은회에서 모든 순서 끝나고

읊조리는 말

고래로 들어온 맘먹기에 달렸다는 말은 때로는 아닌 것 같다. 처한 상황이 때론 먹을 맘을 생기게 한다.

이와 같은 때엔

나라는 전염병 때문에 난리고, 교회들은 예배 때문에 혼란을 겪고 있다. 예배가 사회적 위험요소가 되고 있는 이와 같은 때엔 우리 신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떤 처신을 해야 되는 것일까?

오늘도

오늘도. 모니터 앞에 둘러앉은 흩어진 교회든지, 마스크 쓰고 옹기종기 모여 앉은 예배당 교회든지,

아들

아들은 말도, 생각도, 판단도 또래 아이들을 훨씬 뛰어 넘었다.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하는 아이였다.

더 중요한 것

이전에 가보지 않은 길을 가면서 한국교회는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기도꾼들이 일어나고 있고, 근래에 드물게 진정한 예배의 소중함을 통감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합신이다!

프로 운동선수들은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외딴 곳에 모여서 소위 지옥훈련을 하고 시즌에 나갑니다. 시즌에 나가는 운동선수처럼 합신에서 고된 3년의 훈련을 마치고 본격적인 사역의 현장으로 나가는 여러분을 축하합니다.

살아온 길, 살아갈 길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 6:34). 박 목사님이 생전에 가장 좋아하셨다고 소문으로 알려진 말씀입니다.

도덕성 회복과 신앙 회복

한국교회의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성경적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이 도덕성 혹은 윤리성 회복과 사회적 실용성을 충족시키는 것보다도 더 시급하고 근본적인 문제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하루 또 하루

새해 첫날도 어제의 그 태양이고, 작년 그 시간의 연속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마치 생전 처음 보는 태양인 것처럼, 마치 처음 경험하는 새 세상인 것처럼 새로운 기대와 결심으로 또 하나의 기회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은 다만 우리 하나님의 은혜 일 뿐입니다.

가을 바람은 솔솔 부는데

사도가 제시하는 말세의 고통은 그 양상이 다양하고 다양하다. 그러나 모든 고통을 관통하는 원인은 하나다. 지독한 자기중심적 이기심이다.

사랑하는 하우스맨들에게

우리는 업적이나 결실이나 보상이 아니라, 이 길이 하나님이 주신 길이고,  하나님이 부르신 부르심이기 때문에 이 길에 인생을 걸고 오늘을 살아갑니다. 그것 자체가 이미 보상이고 의미이고 가치입니다.

설교를 위한 성경읽기4-한국인으로 읽기

한국인으로서 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 말씀을 읽고 듣는 사람의 상황을 의식하고 그 상황을 고려하고 그 상황의 사람으로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설교를 위한 성경읽기 3 - 경전으로 읽기

원리적인 차원으로 읽기, 성경의 본질 차원(신학적 차원)으로 읽기, 그리고 세 번째는 이 텍스트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가지고 읽는 것입니다.

설교를 위한 성경읽기 2 - 계시로 읽기

그러니까 설교자에 있어서 본문 해석자로서 설교자로서 가장 중요한 근본적인 문제는 이 성경에 대한 ‘신학적인 전제’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

설교를 위한 성경읽기 1 - 텍스트로 읽기

본문을 접근하고 설교하기 위하여 설교자로서 본문을 해석할 때 어떤 원리나 어떤 안목으로 본문을 다루는가의 문제는 매우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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