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이야기

부활주일 아침

죽음을 죽인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님의 부활의 대반전과 최후 승리를 그러므로 보장된 우리의 부활을 담대하게, 뜨겁게, 자신 있게 전하세요. 부활한 주님을 눈앞에 모신 듯이 하세요. 눈앞에 사람 몇 없어도 온 세상과 우주를 상대하듯이 선포하세요.

한 사람

교회를 개척해놓았는데 예배시간 마다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도 안오고.

설교자는 선포자입니다

설교자는 “선포자(Proclaimer)”입니다 선포자란 왕정시대 왕의 보냄을 받아, 왕의 메시지를, 왕의 권위로 전달하는 자를 말합니다.

구체적인 적용이 있는 해석과 전달

설교자가 본문에 대하여 구체적인 적용이 있는 해석을 하지 않으면 감동적인 구호만 외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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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주일 아침

죽음을 죽인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님의 부활의 대반전과 최후 승리를 그러므로 보장된 우리의 부활을 담대하게, 뜨겁게, 자신 있게 전하세요. 부활한 주님을 눈앞에 모신 듯이 하세요. 눈앞에 사람 몇 없어도 온 세상과 우주를 상대하듯이 선포하세요.

한 사람

교회를 개척해놓았는데 예배시간 마다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도 안오고.

설교자는 선포자입니다

설교자는 “선포자(Proclaimer)”입니다 선포자란 왕정시대 왕의 보냄을 받아, 왕의 메시지를, 왕의 권위로 전달하는 자를 말합니다.

구체적인 적용이 있는 해석과 전달

설교자가 본문에 대하여 구체적인 적용이 있는 해석을 하지 않으면 감동적인 구호만 외치게 됩니다.

새로운 기회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177. 시간의 흐름 속에 간간이 시간의 매듭이 있게 하신 것은 새로운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입니다.

은혜를 입고 사는 아름다움

176. 은혜를 입고 산 우리의 말년도 그렇게 아름다울 것을 기대합니다.

축복합니다

175. 하루 해가 저무는 것을 보며, 살아갈 인생의 영원을 내다봅니다.

새해의 소망

174. 기본에 충실하고, 자꾸 기본으로 돌아가는 모습으로 새 해를 살고 싶습니다.

사람답게 사는 복

173. 나이들어갈수록, 업적을 쌓으며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답게 사는 것이 복이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비전(4)

172. 비전은 구호가 아닙니다.

결국 다다르는 결과

171.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설교자는 설교 자체입니다

170. 설교자는 한 두 번의 이벤트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유명 설교자의 특강 몇 번 듣고 되는 일도 아닙니다.

설교자의 직무유기

169. 본문을 건성으로 읽고, 대충 말하는 식으로 설교하는 것은 무책임이고, 불성실이고, 결국 직무유기입니다.

생각하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168. 생각하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판단하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세월호 참사

167. 300명이 뱃속에 갇혀서 죽어가는 것을 빤히 보고 알면서도 한 사람도 구해내지 않은 높고 낮은 사람들에게 물어야 할 책임

죄악의 최후

166. 아합 왕은, 이스라엘의 어느 왕보다도 더 악하였고 백성들을 범죄케 하였다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설교 회복의 꿈

165. 오늘 날 우리의 목회현장에서 가장 시급한 일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게 하는 것입니다.

강단의 말씀이탈

164. 한국교회는 능욕당하고 있습니다. 아니, 우리 하나님 아버지가 세상으로부터 능멸을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추태

163. 우리는 지금 세상 앞에서, 그리고 교회 앞에서 너무 추태를 부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하나님에 대한 절대신뢰

162.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권력을 부여하는 책임

161. 정말 무서운 것은 무책임한 사람에게 권력을 부여하는 대중의 무책임은 더 혹독하게 그 죄 값을 걸머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성경말씀에 능통한 설교자

160. 신학생들이, 그들의 앞날이, 그리고 그들이 책임지게 될 강단이 많이 염려되곤 합니다.

노년이 아름다운 사람

159. 세월에 대하여도, 사람에 대하여도, 이제는 뒷모습을 많이 보이며 살아야 할 처지가 되었다는 생각을 가끔씩 하게 됩니다.

진리를 말하는 사람

158.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자리에 있을 때는 내가 듣고 싶은 말만 골라서 해주는 사람을 가까이 두려는 유혹을 이겨야 합니다.

설교는 최우선 순위입니다

157.설교가 예배의 성패를 좌우하고, 설교가 목회자의 모든 사역을 좌우합니다.

설교의 부흥

156. 설교할 곳이 점점 없어져 가는 이 시대에 가장 시급한 것은 설교의 부흥입니다. 교회의 부흥이란 사실은 말씀의 부흥입니다.

우리의 살길

155. 폭풍이 덮쳐오는 도망 길 배 위에서 붙잡힌 선지자에게 이방인 선원들이 던진 질문은 결국 두 가지였습니다.

오늘 날의 한국판 서기관들

154. 큰 무리가 예수님을 에워싸며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 사회의 주목 받는 스타로 부상이 된 것이지요.

시대의 징조

153. 목회자는 교인들을 섬기고, 정권을 가진 자는 백성을 섬기라는 시대의 징조요 경고일 것입니다.

여로보암의 길

152. 여로보암의 길로 가지 않아야 하지만, 르호보암의 길로도 가지 않아야 합니다.

역사에서 배우지 않는 결과

151. 벨사살은 느부갓네살의 아들이요 그의 왕위를 이어받은 바벨론의 왕이었습니다.

말하기 전에 먼저 듣는 자

150. 정신없이 자신의 말을 쏟아내던 입을 이제 다물고 파수대의 보초병처럼 눈을 열고 귀를 열어 하나님이 무어라 하시며, 하나님이 어떻게 움직이시는가에 모든 것을 집중해야 하는 사람은 그 옛날의 하박국만이 아닙니다.

기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149. 말라기서는 구약역사의 끝자락을 방탕하게 살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만군의 여호와”라고 이름을 내세우며 나타나신 하나님의 준엄한 책망과 간절한 사랑을 담고 있습니다.

설교의 존재 이유

148. 설교는 과거에 주어진 본문을 오늘의 신앙공동체를 위하여 해석하는 것입니다.

절망의 또 다른 얼굴은 소망

147. 신자의 목적은 어떻게든 살아남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대가를 치르면서라도 신자가 되는 데 있습니다.

신자의 행위

146. 구원을 벌어주는 우리의 행위란 없습니다. 그리고 행위를 만들어내지 않는 은혜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설교자의 길

145. 75세에 난생 처음 하나님을 만났던 아브라함에게 45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에 하나님이 이름을 부르며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100 세에 얻은 아들을 번제로 요구 하셨습니다.

자기가 믿는 바를 말하는 것

144. 어느 길바닥 위에서 예수님은 가던 길을 멈추고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청중을 변화시킬 책임

143. 예수님과 사도들의 경우를 보든지, 설교자로서 우리 자신의 경험을 보든지, 설교를 듣는 청중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개혁신앙

142. 돌아가신 박윤선 목사님은 “개혁주의 신앙 운운하지만, 아직도 자기가 말할 수 없는 죄인임을 절실히 알지 못하며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 아직도 개혁주의 신앙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단언하였습니다.

선조에게 부끄럽지 않으려면

141. 이제라도 우리는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으로 돌아가는 일은 가장 먼저 강단에서 부터 일어나야 합니다.

장기판의 졸

140. 강단에만 서면 떨려서 설교를 못하는 겁 많고 소심한 초년병 설교자인데 강단 공포증에서 벗어나는 비방을 어느 목사님에게서 배웠다며 그것이 맞는 것인지 확인을 받고 싶다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역사의 주권자이신 하나님

140. “후대의 역사가 어떻게 평가하든 괘념치 않는다”는 말로 자신이 저지른 악행에 대하여 전 국민적으로 들끓는 분노와 질타를 조롱하듯 무시해버리는 것은 소위 전직 대통령이라는 자가 할 말은 아닙니다.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

139. 우리의 설교는 청중의 필요 충족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이리저리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청중의 욕구를 이리저리 바꾸는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삶

138.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나님 외에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 외에 모든 것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설교자의 청중 이해의 요체

137. 그렇게 분명한 하나님의 명령을 그렇게 확실하게 거부해버린 요나를 하나님은 당장 죽여 없애고 다른 사람으로 그 자리를 채울 수 있었습니다.

성경 중심의 한국교회

136. 성경을 읽어보고 싶은 열심이 국문공부 운동이 일어나게 하였습니다. 성경을 배우고 싶은 열정이 “사경회(査經會)”라는 이름의 성경공부운동을 일으켰습니다.

긍휼은 공의를 뛰어넘어 존재한다

135. 니느웨를 심판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요나가 분노를 쏟아 붓는 명분은 신학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분명하였습니다.

순종이란 무엇인가

134. 하나님께서 니느웨에 대한 심판을 거두어들이시자, 선지자인 요나와 하나님 사이에 심한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설교자에게 요구되는 것

133. 설교자인 내가 하고 싶은 말도 아니고, 청중인 교인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하고 싶어 하시는 말씀을 설교해야 합니다,

설교자의 반역

132. 이 시대의 가장 큰 문제는 교회가 어두워진 것이고, 교회가 어두워진 가장 심각한 원인은 말씀을 제대로 설교하지 않은 강단에 있습니다.

교회의 진정한 위력

131. 교회가 세상 속에서 권력을 가진 중심 세력이 되면 영향력이 극대화되고, 세상 속에서 교회의 사명을 효과적으로 감당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허구입니다.

신앙회복 운동(3)

130. 히브리산파들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왕명을 어기고 남자 아이들을 죽이지 않은 것은 그들이 휴머니스트들이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생명에 대한 경외심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신앙회복 운동(2)

129. 한국교회의 윤리적 파탄은 도덕성 상실에서 온 것이 아니라, 신앙 파탄에서 온 참상입니다. 신자답게, 교회답게 살지 않아서 벌어진 일인 것입니다.

다음 시대를 내다보며 사는 지도자

128. 한 시대가 다음 세대로 견고히 이어지고, 역사가 지속적으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영웅보다는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명의

127. 교회를 마음껏 비판하고 교회는 이제 끝나버렸다는 식으로 속시원하게 최후 판정을 내리는 것이야 누가 못하겠습니까?

제자의 배신

126.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신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단순히 한 사람이 아니라, 한 교회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영적 지도자

125. 영웅은 현재의 문제를 해결해주지만, 지도자는 장차 닥칠 문제를 대비해줍니다. 그런 점에서 영웅은 현재에 산다면 지도자는 미래에 살아남게 됩니다.

말씀의 침묵

124. 그리고 강단에서 말씀의 침묵은 필연적으로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침묵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리하여 성경은 점점 사라지고 심리학이 목회자의 강단과 교인들의 일상을 지배하게 됩니다.

연약함과 악함

123. 설교를 한다는 것은, 강단에서는 제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고, 내려와서는 내가 한 말이 맞다는 것을 몸부림치는 삶으로 증명해내는 것을 말합니다.

설교를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는 죄

122. 설교로는 목회가 안된다니 그러면 무엇으로 목회가 된다는 말입니까? 그 경우의 목회란 무엇을 두고 하는 말입니까?

목사는 설교를 잘해야 혀!

121. 대중적인 인기는 넘치지만 교인들에게 존경을 얻지는 못하는 설교자들이 범람하는 것은 그들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 있게 선포되는 것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일어나는 비극적인 현상입니다.

성공보다는 충성

120. 어느 해인가 졸업을 앞둔 제자 한 사람이 울면서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수양관에서 저녁에 기도를 하다가 문득, 설교자로서 너무나 부족한 자신의 모습에 자꾸 눈물이 나고 답답하면서 말씀을 가르쳐주신 선생님 생각이 나더라는 것입니다.

설교자의 길

119. 제대로 된 설교자란 강단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선포하고, 강단에서 내려오면 몸부림치는 삶으로 자기가 선포한 말씀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는 설교자를 말합니다.

설교를 잘한다는 말

118. 설교를 잘 한다는 말은, 강단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선포하고 강단을 내려와서는 자기가 선포한 그 말씀이 맞다는 것을 자신의 일상에서 몸부림치는 삶으로 증명해내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

117. 설교자가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에 압도되지 않으면 설교를 그만두고 현장을 떠나게 되든지, 아니면 자신의 돈벌이를 위하여 설교하게 된다는 존 파이퍼의 말은 백번을 생각해도 맞는 말입니다.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

116. 한 설교전문 잡지의 뒷 표지 전면을 장식하고 있는 어느 목사님의 “스피치”라는 제목의 책 선전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어느 강단에서나 들을 수 있는 말씀

115. 설교자가 본문에서 지금까지 아무도 말한 적이 없는 새롭고 심오한 메시지를 해보려고 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입니다.

신앙회복 운동(1)

114. 오늘 날 한국교회가 도덕성이 파탄 난 것은 도덕성을 결여해서가 아니라, 신앙이 잘못되어 일어난 일입니다.

비전(3)

113. 비전을 가진 사람은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것이 아니라, 한 곳에 몰입하는 사람이요, 군중에 싸여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홀로 외로움을 견디며 한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비전(2)

112. 비전은 구호가 아닙니다. 비전은 바라보고 있고 외우고 있으면 그것이 이루어지는 마술도 아닙니다.

어리석은 사람

111. 역사에서 배우지 않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마침내 악을 거침없이 행하게 됩니다.

성령을 의존한다는 것

110. 많은 경우, 성령을 의존한다는 것은 우리가 50% 하고 나머지 50%는 성령님이 하시게 하여 둘이 합하여 100%를 채운다는 말이 아닙니다.

청중에 대한 애정

109. 어떻게 하면 설교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 이런저런 수단과 방법을 시도해보며 고민하는 것을 인본주의적이고 성령의 역사를 제한하는 것이고 기교와 인간적 방법을 의존하는 세속적인 태도라고 비난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신령한 목회자

108. 상당히 오랜 세월 동안, 신령한 목사라는 말로 목회자를 높이 평가하는 것은 매우 일반적인 일이었습니다.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107. 성경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설교가 보편화되고 있습니다. 성경을 아예 사용하지 않기도 하고, 성경을 잘못 사용하기도 하고, 성경을 남용하기도 합니다.

성경을 덮어버린 기독교

106. 한국에 온 초창기 선교사들은 한국교회를 가리켜 “성경기독교”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신자들을 가리켜서는 “성경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소망을 갖고 돌아가게 해야 합니다

105. 똑같은 내용으로 똑같이 고함을 질러대는 설교이지만, 교인들이 그렇게 살지 않는 것이 안타까와서 지르는 고함과 그렇게 살지 않는 교인들에 대한 분노가 북받쳐 지르는 고함은 듣는 사람에게는 확연히 구별이 되어 전달됩니다.

제대로 된 설교자

104. 제대로 된 신학에서 나온 현실 인식. 치열한 고민을 통하여 나오는 깊이 있는 말씀. 하나님과 그의 백성인 교인들에 대한 사무치는 애정. 그리고 강단에서 설교한대로 살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현실에서의 삶.

한편의 설교를 위한 치열함

103. 자기의 노래 한곡을 발표하기 위하여 녹음했다 지웠다를 3년 동안 반복하고 드디어 음반을 낸다는 가수의 기사를 읽었습니다.

신자로 신자 되게, 교회로 교회되게!

102. 신자로 신자 되게, 교회로 교회되게! 그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입니다. 이 시대의 설교가 집중해야 할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성경 문맹

101. 중세시대는 교인들로 하여금 성경을 갖지 못하게 하고 설교를 청중이 못알아 듣는 언어로 하게하여 교인들을 성경 문맹으로 만들었습니다.

전달되지 않은 해석

100.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그것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 청중이 듣지 않는 설교와 설교자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를 몰라서 청중이 듣지 못하는 설교는 완전히 다른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절대권위를 본질로 하는 하나님과 그의 말씀

99. 절대 권위를 절대 거부하는 포스트모던시대이므로 권위를 내세우거나 권위의 냄새를 풍기는 설교를 피하는 것이 이 시대를 사는 청중에 대한 민감한 대처이며, 현대교회에서 살아남는 설교의 비결이라는 주장은 영리한 전술인 것 같기는 하지만, 전혀 맞는 말은 아닙니다.

설교를 제대로 하기 위하여 목숨을 걸라

98. 30년도 더 전에 들었던 박윤선 목사님의 절규에 가까운 말씀이 가슴에 사무칩니다. "설교 한마디 하기 위해서 준비하느라고 그야말로 쓰러질 정도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생각의 천박함과 말의 뻔뻔스러움

97. 교회세습에 대한 그 어른의 논리는 대충 이렇습니다. “다른 목사가 후임을 맡아서 잘하면 시기와 질투심이 나고, 아들이나 사위가 맡아서 잘하면 흐뭇해진다. 시기와 질투는 교회를 어렵게 하는 심각한 문제다.

통곡하는 설교자들은 다 아는 비밀

96. 한편의 설교를 위하여 설교자는 본문을 열어놓고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기다립니다. 그 기다림은 기대와 두려움에 찬 떨림이기도 합니다.

기본으로 돌아가라

95. 지난 3일 동안 새벽 낮 저녁, 연속 일곱편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38년 동안 어린이 사역과 사역자 양성에 모든 것을 바쳐온 분이었습니다.

기대에 찬 기다림

94. 루돌프 보렌이 말한대로, 설교에는 “기대에 찬 기다림”이 있습니다. 설교가 시작되기 전에, 설교자의 말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기대를 품고 여러 집들에서 나와 한 집으로 찾아 나옵니다.

청중의 필요를 채워주는 설교

93. 청중의 필요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청중이 요구하는 필요(expressed need)와 청중에게 실제로 필요한 필요(actual need)입니다.

설교자의 고민

92. 청중이 듣고 싶어 하는 설교를 할 것인가, 그들이 들어야만 되는 설교를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설교자의 영성

91. 설교자의 영성이란 범상치 않은 신통력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성이란 그 자신이 설교한대로 살아내려고 몸부림치는 인격을 말합니다.

고독한 몰입

90. 엘리야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노라면 언제나 “고독한 몰입”이라는 한 마디로 결론이 납니다. 아무런 성과도 그리고 대가도 보장되지 않은 길을 혼자서 무작정 가고야 맙니다.

설교를 향한 처절한 고뇌

89. “누님, 이젠 소리로는 먹고살기 힘든 세상이여! 괜히 쓸데없는 짓 하다가 골병들지 말고 관두란 말여! 그까짓 소리 허면 쌀이 나와 밥이 나와!"

듣기에 재미있는 설교와 마음에 남는 게 있는 설교

88. 75세 노인 한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장 아무개 목사님의 설교가 하도 재미있어서 TV에서 자주 보았습니다. 그런데 성경 말씀을 확실하게 전해주는 다른 분의 설교를 듣고서야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은 본능

87. 개콘보다도 더 재미있게 설교한다는 장 아무개 목사님 교회로 사람들이 몰려드는데 오히려 그 주위에 있는 작은 교회들은 그 교회의 덕을 본다는 이해 안되는 말을 그 지역에서 작은 교회 목회하는 분에게 들었습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펼치는 스릴 넘치는 모험

86.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아무 일없이 잔잔한 호수의 고요함이나 천둥번개에도 상관없는 동굴 속의 안전함 같은 생활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청중을 변화로 이끄는 설교

85. 우리의 설교가 청중과 소통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설교자는 청중을 변화로 이끄는 설교를 고민해야 합니다.

교인들은 다 알아차립니다

84. 교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신앙이 성숙하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가르치고 권면하는 것과, 교인들의 신앙성숙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설교자의 맺힌 한을 푸는 것은 스스로 분간이 됩니다.

목사는 설교를 잘해야 합니다

83. "설교를 잘 혀라. 목사는 설교를 잘해야 혀. 교인들은 세상에 나가서 한 주간 내내 죽을 둥 살 둥 살다가 주일날 교회에 와서 말씀 한마디 얻어듣고 다시 살아날려고 교회에 나온다.

본문에 의미를 주입하는 결과

82. 설교자는 본문에 의미를 부여하는 자가 아니라, 본문의 의미를 파악해 나아가는 자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설교는 “강요”가 아니라, ”강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설교의 마지막 말

81. “주의 말씀을 들었으니 세상에 나아가 이 말씀대로 사십시요~" 이 말씀은 설교를 마치는 설교자들이 해서는 안되는 말입니다.

성경대로 믿고 살아보고 싶은 소원

80. 세상은 우리가 서 있는 전통과, 우리가 말하는 내용은 물론,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우리가 개혁주의자라는 것을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서로 돌아보아 선행을 격려해야 합니다

79. 아, 교회가 정말 교회다워지고, 신자가 정말 신자다워지는 날이 빨리 오면 좋겠습니다.

교회로 교회되게 하라!

78. 유학 마치고 돌아와 담임목회 시작한지 2년 후, 만 하루의 비행기를 타고 다시 돌아가 브라운 교수님을 찾아뵈었습니다.

급한 상황이 닥칠수록 가장 시급한 일

77. 하나님을 알아가는 연륜이 쌓여갈수록 더욱 확실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은혜 받지 못하는 설교에 대한 불만

76. 이 나라 신자들은 당신은 설교를 못해서 안되겠으니 교회를 떠나달라고 드러내놓고 문제를 삼을 만큼 당돌하거나 무례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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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못한다고 쫓겨난 목사는 없다?(2)

75. 설교에 은혜를 받으면, 목사의 웬만한 실수는 덮고 지나갑니다. “목사님도 사람이잖아!” 그러나 설교에 은혜를 받지 못하면, 그렇게 반응하지 않습니다. “그게 목사야?” 모든 것이 구설수가 되고 책잡을 실마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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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못한다고 쫓겨난 목사는 없다?(1)

74. 고래로 속담처럼 내려오는 말이 있습니다. “설교 못한다고 쫓겨난 목사는 없다. 인격 때문에 쫓겨난다!” 목사에게는 설교보다 인격이 중요하다는 정당한 강조이기도 하고, 설교를 너무 강조하는 것에 대한 반감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목회자와 설교자

73. 목회자는 사람을 책임지는 일에 인생을 걸겠다고 나선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람을 책임지는 일의 본질과 핵심은 말씀사역입니다. 그리고 목회자의 말씀사역의 주된 내용은 설교입니다.

회개

72. 아하시야는 아합의 아들입니다. 그는 2년 밖에 왕 위에 있지 않았지만, 역사상 가장 악했던 아버지 아합 만큼 악하다는 단정을 받을 정도로 악한 왕이었습니다.

지금이라도 교회가 사는 길

71. 그간 저지른 이런저런 비리와 물의 때문에 해체대상으로 지목받으며 안팎에서 온갖 지탄을 받고 있으면서 6.25 행사를 대대적으로 추진하여 실추된 기독교의 이미지를 회복하는 절호의 기회로 삼겠다는 발상은 전혀 신앙적이 아닙니다.

설교자의 책임

70. 설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설교자입니다. 본문은 설교자의 해석을 통해서만 청중에게 말합니다. 성령은 설교자를 통하여만 역사하십니다. 그리고 청중은 설교자가 말할 때에만 들을 수 있습니다.

참된 해방감과 깊은 평안

68. 교인들은 지옥을 말하는 설교를 싫어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옥설교를 지옥같이 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헌신을 강조하는 설교를 강도 만나 강탈을 당하는 것처럼 하고, 죄를 지적하고 회개를 강조하는 설교를 협박과 공갈을 당하는 것처럼 설교하는 것을 싫어할 뿐입니다.

죄와 회개의 메시지

67. 오늘 날 교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부담이 아니라 평안이라며 죄와 회개의 메시지는 일부러 덮어버리고, 용서의 하나님이시니 괜찮다고 위로하고, 하나님은 당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시니

청중에게 화가 나서 하는 설교

66. 목회를 하다 보면 때로는 교인들이 서운할 때가 있고, 답답할 때가 있고, 그러다보면 분노가 생길 때가 있습니다.

삶의 현장에 연결된 설교

65. 설교는 매 순간을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신자들을 그 대상으로 합니다.

금기시하는 주제들을 설교하는 용기

64. 죽음이 임박한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하는 말은 이 한 마디였습니다. “말씀을 선포하라(Preach the Word)"

학자의 머리와 목회자의 심장

63. 설교자는 학자의 머리와 목회자의 심장을 동시에 가져야 합니다.

무용지물 설교 감언이설 설교

62. 신학적으로, 해석학적으로 심오한 깊이가 있는 설교인데 청중이 알아들을 수 없는 설교는 무용지물 입니다.

나는 무엇을 그만두어야만 하는가?

61. 설교자로서 할 필요가 없는 일, 해서는 안되는 일에 우리는 너무 많은 시간과 정력과 은사를 허비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해야할 일

60. 설교자의 설교준비실에서 일어나지 않은 사건은 주일 강단에서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교회를 세우는 설교

59. 정직하고 진실하게 말씀을 설교하다가 때가 되면 그 모습으로 주님을 만나고 싶은 설교자들 가운데는 이런 저런 서러움과 아픔을 안고 외롭게 그 길을 가는 이들이 많습니다

설교는 기적의 사건

58. 설교는 성령님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기적의 사건이라고 강조하는 루돌프 보렌의 말을 나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열정과 청중을 향한 애정

57. 설교를 잘 해보려고 고뇌하는 설교자에게는 언제나 세 가지가 깊은 고민입니다.

설교를 잘하게 되는 방법

56. 설교는 신학공부를 열심히 하다보면 그것도 잘하게 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예배 시간이 아깝고 억울한 사람들

55. 설교가 성경을 말해주지 않아 들을 것이 없어서, 예배 시간에 앉아 있는 한 시간이 아깝고 억울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증인으로 사는 설교자

54. "나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고 교회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보고 교회에 나온다는 말을 나는 믿지 않습니다.

개혁주의 실천가

53. 개혁주의를 외치는 것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습니다. 개혁주의로 살아야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정당한 설교

52. 설교는 하늘의 천사들 들으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온 세상 사람들이 다 들으라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고집불통 되는 것을 무서워해야 합니다.

51. 한 청년이 블로그에 이렇게 써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이마에 주름살이 생기는 것쯤은 감수 할 수 있지만, 마음과 시야가 좁아지는 건 참을 수가 없어서, 난 단 일 년이라도 더 살아가기가, 점점 무서워진다.”

우리 모습 돌아보기

50. 평생을 남아공의 흑인 인종차별과 맞서 싸운 80 노장의 데스몬드 투투 주교의 BBC 인터뷰를 보았습니다.

어떤 교수님께 받은 편지

49. “다른 것 말고, 본문이 말하는 것을 정확히, 그 의도를 일깨워 주는 설교를 들으면, 가슴이 뛰고, 설교시간 내내 가슴이 후끈 거리는 것을 느낍니다.

설교자의 청중 이해

48. 자기의 설교를 듣는 청중을 어떻게 여기는가는 설교자 자신을 위해서도, 그가 하는 설교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설교자에 대한 분노

47. 강남의 이름난 초대형 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길이라며 주일 오후에 한 젊은 친구가 걸어온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 친구는 심한 말로 그 교회 설교자에게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기도 없이 하는 모든 설교는 결국 헛것입니다

46. “기도를 많이 하시오!” “예” “기도를 많이 해야 돼!” “예” “기도를 많이 하라구!” “예”

능력 있고 효과 있는 설교의 숨은 비밀

45. 매주일 교인들이 쏟아 붓는 기도의 소나기를 맞으며 강단에 오르는 설교자가 능력이 넘치는 설교를 하지 못하고 그곳을 내려온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합니다.

기도가 쏟아 부어지지 않은 설교

44. 설교의 생명은 성령에 있고 성령은 우리의 기도를 통하여 역사하신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복되게 하는 일

43. 하나님의 말씀을 내려놓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하나님을 점점 더 크게 반역하고, 교회를 점점 더 깊은 수렁에 몰아넣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말씀을 전파하라

42. 또 다시 많은 제자들이 신학교를 졸업하고 현장으로 나아갑니다. 교회가 문을 닫는 일이 일상화되고 있는 험한 현장으로 그들을 내보냅니다.

어려운 설교

41. 가장 고급한 수준인 성경신학적 설교를 하니까, 가장 깊이 있는 개혁신학에 입각한 설교를 하니까, 나의 설교는 어려울 수 밖에 없으며, 청중의 수준이 그런 설교를 들을 만큼 높아져야 한다면서 그 어렵고 복잡한 말로 하는 설교를 고집하는 설교자들이 있습니다.

강의와 설교

40. 극장의 연극무대와 교회의 설교강단이 전혀 다른 것처럼, 신학교 강의실과 교회 강단도 다릅니다.

주해와 설교

39. 주해와 설교는 전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주해는 본문이 담고 있는 가능한 모든 의미들을 들추어내는 것이고, 설교는 주해를 통하여 드러난 여러 의미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여 마치 본문은 그것만을 말하는 것처럼 그것을 전하기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설교자의 책임

38. 설교자는 두 가지 초점을 분명히 하고 설교해야 합니다. 청중이 알게 하고 싶은 것이 분명하고, 청중이 행하게 하고 싶은 것이 분명해야 합니다.

설교자는 설득하는 프로입니다

37. “아마추어는 강요하고, 프로는 설득한다!” 설교의 목적은 청중의 변화이고, 그 수단은 설득입니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36. 황진이 라는 영화를 찍은 장윤현 감독이 영화 촬영을 마치고 쫑 파티를 하면서 그랬다합니다.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

그 목사님이 지금도 감사합니다

35. 정말 오래 전에, 기도원에 갔다가 목사님 한 분을 만났습니다. 목회를 제법 오래 했는데도 여전히 매 주일의 설교준비가 너무 힘들고 부담스러워 이제는 쉽게 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하였습니다.

이야기(5)

34. 자신의 설교로는 사람들이 변하지 않는다고 괴로워하는 7년차 전도사에게 들려준 마지막 이야기는 이것이었습니다.

이야기(4)

33. 자신의 설교로는 사람들이 변하지 않는다고 괴로워하는 7년차 전도사에게 들려준 네 번째 이야기는 이것이었습니다.

이야기(3)

32. 자신의 설교로는 사람들이 변하지 않는다고 괴로워하는 7년차 전도사에게 들려준 세 번째 이야기는 이것이었습니다.

이야기(2)

31. 자신의 설교로는 사람들이 변하지 않는다고 괴로워하는 7년차 전도사에게 들려준 두 번째 이야기는 이것이었습니다.

이야기(1)

30. 자신의 설교로는 사람들이 변하지 않는다고 괴로워하는 7년차 전도사에게 들려준 첫 이야기는 이것이었습니다.

설교자의 책임

29. 그는 한 가지 심각한 고민을 가진 7년차 전도사였습니다. “왜 내 설교로는 사람이 변하지 않는 것일까?”

청중이 알아듣기 쉽게 해야 합니다

28. 내가 하는 설교에 이 사람들의 살고 죽는 문제가 걸렸다는 절박함으로 강단에 선다면 그렇게 애매모호한 내용으로, 그렇게 알아듣기 어려운 어법으로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Stay there

27. 자식 하나 낳듯 하여 설교 한편 들고 섰는데, 청중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고, 숱한 세월 설교에도 그들의 삶은 요지부동이어서, 한없는 서운함과 무력감에 삶이 서러울 때가 설교자에게는 있습니다.

설교다운 설교

26. 설교는 신학의 한 과정을 마치기만 하면 그 후에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그리워합니다

25. 설교를 시작하기 전에 본문을 봉독하는 것은 이 말씀을 설교하겠다는 청중에 대한 공적인 약속입니다.

잘하는 설교

24. 목사가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교인을, 가장 크게 행복하게 하는 길은 설교를 잘 하는 것입니다.

효과적인 전달이라는 명분

23. 오늘 날 너무나 많은 설교자들이 효과적인 전달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청중이 알아듣기 쉬운 말로 설교의 언어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청중이 좋아하는 내용으로 설교의 주제를 바꾸고 있습니다.

새해

22. 부디, 새해에는 부디,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글들을 힘써 접하기 바랍니다.

새로운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21. 시간의 흐름 속에 간간이 시간의 매듭이 있게 하신 것은 새로운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입니다.

설교자의 직무유기

20. 인생의 모든 문제를 다루되 누구의 문제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는 포괄적인 설교를 꿈꾼다면 그것은 직무유기일 뿐 아니라 비겁한 것이기도 합니다.

1만 시간의 법칙

19. 한 분야에서 진정한 전문가가 되고, 탁월한 능력자가 되기 위해서는 일만 시간의 연습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것을 1만 시간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쉬운 설교

18. 설교는 쉬운 내용을 어렵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쉬운 내용을 쉽게 말하는 것입니다.

헌신

17.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의 헌신을 귀하게 여기시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께 무슨 도움이 되어서가 아닙니다.

설교에 몰입하는 설교자

16. 이 가수가 노래하는 것을 볼 때마다, 나는 설교자로서 여러 도전을 받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설교하는 사람

15. 설교자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 자신에게 설교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가장 무서운 심판

14. 하나님이 행하시는 가장 무서운 심판은 회개할 기회를 박탈해 버리는 심판입니다.

회개를 말하는 것

13. 사람은 모두가 연약합니다. 그러므로 누구에게도 절대로 죄를 짓지 말기를 요구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우리의 손에 성경이 맡겨져 있다는 사실

12. 우리의 손에 성경이 들려져 있다는 것은, 사실은 얼마나 엄청난 영광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해석할 때, 사실 우리는 얼마나 위험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모릅니다.

우리 설교자들 때문에..

11. "신천지 이단의 성경해석과 설교적 대응"이라는 주제로 여러 밤을 새운 논문을 한국설교학회에서 발표하였습니다.

설교자로 사는 복

10. 설교가 무엇인지를, 어떤 연유로 내가 설교자로 있게 되었는지를, 설교를 통하여 하나님이 마침내 이루고자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이해한다면, 설교는 어떤 순간에라도 즐거운 것입니다.

청중의 눈물

9. 소리소리 질러대는 내 설교를 들으며 할머니 한분이 눈물을 훔치며 훌쩍거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사람

8. 설교자는 청중이 들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사람입니다. 구약시대에 이것은 거짓선지자와 참선지자를 구별하는 중요한 표지이기도 하였습니다.

오늘 사는 우선순위

7. 정말 설교를 잘하는 설교자가 되려는 비전이 있으면 오늘 사는 우선순위를 그에 맞게 정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스스로를 속이는 자입니다.

비전(1)

6. 비전은 구호가 아닙니다. 비전은 바라보고 있고 외우고 있으면 그것이 이루어지는 마술도 아닙니다.

성실한 설교자

5. 성실한 설교자가 되십시오. 한 번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스타 설교자를 꿈꾸지 마십시오.

청중을 사랑해야 합니다

3. 설교를 들을 청중을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설교하는 것을 사랑하기 때문에 설교를 한다면, 당신은 쾌락주의자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당신의 설교를 듣는 것이 기대가 되게 하라

2. "당신의 설교를 듣는 것이 기대가 되게 하라!"

설교를 장난말로 하면 어떡해요?

1. 듣는 사람이 알아먹어야 메시지인 거지, 상대는 못알아먹는데 어떻게 메시지입니까? 혼잣말이지요.

설교자의 고뇌와 축복

설교자에게 설교는 한없는 영광과 특권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끝없는 고뇌이기도 합니다.

사모님의 마무리 펀치

설교자는 때때로 한없는 외로움을 느끼곤 합니다. 주일 오후예배 후, 하루의 모든 순서가 다 끝나고 교인들도 다 집으로 돌아가 버린 텅 빈 예배실을 보고 있으면 하루의 은혜가 감사하기도 하고, 또 보람과 감동이 있기도 하지만, 때로는 엄습해오는 왠지 모를 허전함이나 쓸쓸함에 젖어서 힘없는 발걸음으로 집에 돌아오기도 합니다.

그 강단에는 그 설교자를 세우신 뜻

다른 사람의 설교를 그대로 베껴서 하거나, 혹은 일부분을 그대로 옮겨다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윤리적으로도 잘못된 것일 뿐 아니라, 심지어는 범죄행위라고 까지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청중을 지향하는 설교

설교는 본문과 청중이라는 두 대상을 동시에 향하여 있습니다. 본문을 향하여는 해석을 하고, 청중을 향하여는 본문의 해석을 전달해야 합니다.

아령을 가르치는 바이올린 선생님

설교자에게 있어서 설교는 평생토록 하는 장기 사역입니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자신의 설교를 하루 벌어 하루 먹는 날품팔이와 같이 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마술사의 마지막 훈수

마술사의 마지막 훈수 역사적으로, 교회가 큰 힘을 발휘할 때는 그 한 가운데에 힘 있는 설교가 있었고, 교회가 힘을 잃고 무력할 때는 거기에는 항상 무력한 설교가 있었다는 것은 많은 학자들이 인정하는 정설이기도 합니다. 긴 안목으로 볼 때 교회의 문제는 궁극적으로는 설교의 문제요, 설교의 문제는 결국은 설교자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기판의 졸이라니요

장기판의 졸이라니요! 설교자가 자신의 설교를 듣는 청중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얼마 전 이었습니다. 어느 학교에서 신학생들을 상대로 한창 강의를 하고 있는데, 한 학생이 손을 들었습니다. 아직 초년병이어서 강단에만 서면 불안하고 떨려서 설교가 잘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설교자를 세우기 위해

훌륭한 설교자는 어느 날 갑자기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날 눈 떠보니 지난 밤 사이에 유명한 설교자가 되어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식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훌륭한 설교자는 오랜 시간을 두고 끊임없이 형성되어 가는 것입니다.

잘못 내린 결론

설교는 기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말씀하시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설교자들에게 설교는 영광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하셔야 될 일에 사람이 쓰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설교자의 기도

설교자의 기도 목사가 설교를 할 때는 하늘의 천사들 들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온 세상 사람이 다 들으라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목사는 그 시간에 거기 앉아 있는 그 교인들 들으라고 설교합니다. 이것은 상식 중의 상식입니다. 그런데 거기 앉아 있는 회중 가운데서 "왜 설교를 나 들으라고 하느냐?" 면서 들고 일어나는 희한한 일들이 종종 일어나곤 합니다.

본문의 말씀이 듣고 싶은 사람들

몇 년 전 이었습니다. 지방에 사는 40대 초반의 부부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들에게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설교를 통하여 성경 본문이 말하는 말씀을 듣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관객들

관객들 꽤나 큰 극장에 연극을 관람하기 위하여 관객들이 자리를 메우고 있었습니다. 무대 뒤에서는 배우와 연출자가 이제 막 연극의 막을 올리려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순간 연출자가 다급하게 배우를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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